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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웨디쉬 코베난트병원] 윤충섭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1-01-13 오전 10:36:24

1976년 미국으로 건너와 이곳 스웨디쉬 코베난트병원 수술실에서 처음 근무할 때 나는 무척 한심스러운 간호사였다. 수많은 얼굴과 가지각색의 이름을 가진 이방인들이 똑같은 복장과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매우 큰 몸집과 눈동자는 항상 나를 쩔쩔매게 했고 총알같이 내뱉는 말을 알아듣기 위해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러나 이 고달팠던 기억들이 이젠 아련한 옛이야기가 돼 버렸다.

일한 지 10여년쯤 되니 수술실 일에 자신이 붙고 귀와 입도 열리게 됐다. 그와 동시에 내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기구와 물품을 잘 챙기는 것만이 아니라 수술실에 들어온 환자를 잘 보호하고 대변해주는 일이라고 느꼈다.

수술실에서 일하는 목적은 집도의를 위한 것도,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도 아닌 바로 한 사람의 환자를 책임지고 간호하는 것임을 깨닫고 난 후부터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180도 바뀌게 됐다.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술실에서 바쁘게 일하다 보면 '사람'을 간호한다는 사실을 잊기 십상이다. 간호사가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기계나 기구에 신경을 쓰다보면 사람은 없고 질병만 남는 것이다.

그간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궁리하던 중 한국의 임상간호사회 수술실간호분야회와 연락이 돼 지난해 10월 수술실간호사 간담회에서 강연하게 됐다. 25년만에 서울에 와 대학병원 수술실 시설을 서너군데 돌아보았다. 한국 간호사들은 간호기술이 뛰어나고 지식과 센스가 풍부했으며 맡은 업무를 충실하게 해내는 능력이 있어 보였다. 많은 젊은 간호사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열의에 차 있어 인상 깊었다.

미국 수술실간호사의 평균 연령은 48세로 매우 높은 편이다. 간호대학 입학생이 줄어들고 있고 수술실 근무를 기피하는 경향 때문에 수술실 간호사 부족 현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반면 수술실테크니션 양성학교는 전성기를 이루고 있다. 병원측에서는 간호사 월급의 반에 해당하는 비용으로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술실 테크니션을 고용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간호사와 테크니션의 역할은 엄연히 구별돼 있다. 테크니션은 기계나 도구를 준비하고 소독을 하는 등 연습만으로 가능한 단순한 일을 한다. 간호사는 환자와 계속 접촉하면서 충분한 대화를 통해 병력과 상태 등을 점검하며 적절한 간호계획을 한다.

한국 간호사들도 수술 전 환자와 많이 대화하고 간호진단을 철저히 해 환자가 안심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믿음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미국의 수술실간호사협회(AORN)는 약 4만3000명의 회원과 340개의 지부를 갖고 있는 거대하고 세력있는 단체다. 수술실간호사 업무표준을 마련하고 수술실 간호수가 개발 작업을 추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수술실간호분야회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젊고 의욕있는 많은 간호사들이 힘을 합친다면 머지않아 장족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예감을 이번 방문을 통해 할 수 있었다.

25년만의 만남이 너무 짧아 섭섭했지만 모국의 수술실간호사들을 접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따뜻하게 맞이해 준 그들에게 멀리서 지면으로나마 안부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