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간호문학상 소설 당선작
정(情)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3-12-18 오전 09:03:28
- 최언희(경기 일산 아르고요양병원)
장마가 끝난 뒤의 공기는 스치는 것은 무엇이든 태워버릴 기세다. 화물칸에 ‘초록 풍선’ 녹색 로고가 선명한 1톤 탑차가 장미아파트 안으로 진입한다. 차가 멈추자 운전석 문이 열리며 같은 로고가 찍힌 모자를 비스듬히 눌러쓴 명수가 뛰어내렸다. 명수는 배달 전표를 뒤적이며 화물칸에서 커다란 상자를 찾아 전표와 대조한 후 옆구리에 끼고 아파트 현관을 향했다. 현관문을 밀자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감쌌다. 명수는 모자를 벗어 머리를 흔들고 다시 모자를 눌러썼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점검 중’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명수는 잠시 안내문을 쏘아보다 계단을 향해 몸을 돌렸다. 목적지는 15층. 명수는 두 계단씩 성큼성큼 걸었다. 5층에 오르자 이마에 땀이 맺혔다.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며 5층 출입문을 힐끗 쳐다봤다. 명수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번졌다.
며칠 전이었다. 배달할 물건을 들고 초인종을 누르자 5층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나왔다. 여자의 등 뒤로 햇살이 쏟아졌고 하늘거리는 원피스 속에 감추어진 여자의 나신이 눈 안 가득 들어왔다. 눈이 번쩍 떨어졌다. 흥, 얼굴은 아닌데 쭉쭉 빵빵 몸매는 예술이군. 명수는 힐끔힐끔 여자를 훔쳐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명수는 유난히 더위를 타는 체질이지만, 가끔은 예기치 않게 눈이 호사하는 여름을 좋아했다.
실실 웃으며 계단을 오르는 명수의 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흰색 나이키 운동화가 사뿐히 9층을 지나갔다. 그때 전화기에서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치는 싸이의 흥겨운 노래가 울렸다. 전화기 화면에 ‘정’이 찍혀있었다. 왜?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았다. 빨리 와! 엄마가 위독해. 정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명수의 고막을 찌르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야! 야! 명수는 정아의 목소리를 잡으려는 듯 소리쳤다. 짧은 말이 복도 벽에 부딪혀 발버둥 치며 울렸다. 명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며칠 전 통화할 때만 해도 정아는 달자의 상태에 대해 그만그만하다고 말했었다. 명수는 배달할 물건을 옆구리에 낀 채 돌아섰다.
정아는 6층 병실 복도 끝 창가에 서 있었다. 시선이 빌딩 입구에 고정되어있다. 정아 옆 대형 에어컨이 찬바람을 토해내자, 정아는 얇은 하늘색 카디건 앞섶을 여몄다. 파마한 지 오래된 듯 웨이브가 풀린 긴 머리카락이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병원 입구에는 24시 편의점에서 펼쳐놓은 파라솔이 놓여있고, 환의를 입은 남자 셋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명수의 차가 편의점을 지나 건물 주차장으로 향하는 것이 정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정아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흘리며 돌아섰다.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지나 계단을 향했다.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계단을 내려갔다.
명수는 6층 병원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병원은 빌딩 3, 5, 6층을 사용하는 120 침상의 재활전문병원이었다. 병실 문 앞에 휠체어가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명수는 좁은 복도에 늘어선 휠체어를 보자 숨이 막히는 듯했다. 병실은 대부분 6인실이었다. 6인실이라지만 환자 한 명에 한 명의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딸려 있으니, 정확하게 말하면 12인실이었다. 창과 입구를 가리지 않도록 양쪽 벽을 따라 가로로 3개의 환자용 침대가 놓여있고, 그 밑에 간병인이 사용하는 간이침대가 놓여있었다. 침대와 침대 사이에는 개인사물을 수납할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지만, 물품을 수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었다. 침대 주위에 종이상자가 층층이 쌓여있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침대마다 설치한 커튼레일에는 세탁한 옷가지들이 불규칙하게 널려있었다. 어수선한 병실을 보며 명수는 난민촌을 떠올렸다.
병실에는 간병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명수는 인사도 없이 병실 안으로 걸어갔다. 간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명수의 뒤통수를 따라 움직였다. 병실 안쪽 창가 침대에 달자가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이불을 목까지 덮고 미동도 없이 잠든 모습이 마치 미라 같았다. 명수는 달자의 얼굴에 자신의 귀를 가까이 댔다. 규칙적인 숨소리를 확인한 후 명수는 병실을 둘러봤다. 간병인들은 얼른 명수의 시선을 피해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 보호자 어디 갔어요?”
명수는 정아의 부재를 추궁이라도 하듯 퉁명스럽게 물었다.
“갔어요. 금일부터는 아들이 간병할 거라지?”
간병인들 중에 제일 젊은 간병인 여자가 파란 슬리퍼를 탁탁 털며 말했다. 파란 슬리퍼는 연변에서 온 조선족으로 정아보다 두 살 위였다. 두 사람이 친구처럼 지낸다는 것을 명수도 알고 있었다.
"아들? 아들 누구?”
“누군 누구 간디.”
파란 슬리퍼가 턱으로 재빠르게 명수를 가리켰다.
“아이쿠, 벌써 작업치료 시간이네."
파란 슬리퍼는 자기가 돌보는 환자를 서둘러 휠체어에 앉힌 다음 휠체어를 밀며 밖으로 나갔다. 다른 간병인들도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명수는 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들리기 무섭게 정아가 전화를 받았다.
“야! 도련님아, 잘 해봐라. 난 간다.”
정아의 목소리가 경쾌하고 푸르게 고막을 울렸다.
“야! 뭘 잘해. 어디야?”
명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다. 명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한 달 전 일이 떠올랐다. 늦은 밤 명수가 달자를 찾았을 때였다. 달자는 고르게 코를 골며 누워 있는데, 간이침상에 잠들어 있어야 할 정아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명수는 덜컥 겁이 났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명수는 명지도 없는 지금 정아에게 못할 짓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정아에게 미안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아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입이 탔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그때 파라솔 아래 구부정하게 휜 정아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야!”
명수는 반가운 마음에 정아의 어깨를 툭 쳤다. 가벼운 터치에도 정아의 어깨가 심하게 흔들렸다.
“야! 안자고 뭐 하냐?”
명수는 정아 앞에 놓여있는 맥주 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정아의 어깨를 쳤다. 정아의 상체가 다시 흔들렸다.
“산다는 게 뭘까?”
고개를 드는 정아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순간 명수는 가슴을 가로지르며 전기뱀장어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씨발 겨울도 아닌데 왜 이리 추워, 야! 안주는 없냐!”
정아가 말없이 일어나 병원으로 걸어갔다. 명수는 급하게 맥주를 비우고 정아를 따랐다. 정아가 간이침대에 등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눕는 것을 보고 명수는 병원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명수의 다리가 자꾸 휘청거렸다.
산다는 게 뭘까? 정아의 말이 자꾸 명수의 고막을 울렸다. 산다는 것?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주름진 얼굴과 뒤틀린 몸뚱이. 이게 바로 사는 거야. 빌어먹을! 명수는 중얼거리며 달자 머리맡에 놓인 사각 휴지통을 들어 병실 바닥에 패대기쳤다. 퍽 소리에 잠을 깬 달자가 명수를 봤다. 순간 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달자는 몇 해 전 뇌출혈로 쓰러진 후 왼쪽 수족을 쓰지 못하는 편마비가 왔다. 편마비가 온 후로 달자의 표정으로는 감정 변화를 읽을 수 없었다. 아프거나, 화내거나, 웃을 때나, 울 때도 얼굴은 항상 똑같은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명지, 명지”
달자가 어눌하지만 맑은 음성으로 말했다.
“명지! 명지! 명지! 씨발, 언제까지 명지 타령만 할 거야?”
달자가 오른손을 명수 앞으로 내밀었다.
“명지고 뭐고 정아 어디 갔어?”
정아라는 말에 달자는 고개를 돌려 명수의 시선을 피했다. 그때 명수의 주머니에서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다. 전화기 화면에 ‘초록 풍선’이 찍혀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방금 오겠다고 한 사람이 안 온다고 사무실로 전화가 오고 난리잖아.”
전화를 받자마자 소장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다짜고짜 소리부터 내질렀다.
“죄송합니다. 엄마가 위독해서 병원에…….”
명수의 목소리가 다시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갈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배달은 하고 가야지! 이게 뭐 애들 장난이야?”
씨발 새끼, 그래 평생 배달이나 하고 살아라. 명수는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오려는 말을 겨우 삼켰다. 쏟아내지 못한 말이 목울대를 찌르기라도 했는지 목구멍이 뻐근했다.
“우리 직업은 에……거시기 뭐냐, 빠른 스피드와 약속이 생명인 거 몰라? 어떻게 할 거야?”
소장은 언제나 빠른 스피드와 약속을 강조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껏 초록 풍선이 택배 업계에서 최고의 물류량을 자랑하는 것이 모두 자기의 투철한 직업 정신 때문이라는 듯 거드름을 피울 때면 명수는 전날 먹은 밥알이 다 곤두서곤 했다.
“내일 아침 일찍…….”
명수는 말꼬리를 흐렸다.
“어이, 긴말 필요 없고 이런 식으로 일할 거면 그만둬! 일할 사람 널렸어.”
소장은 명수의 말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명수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다행히 지금 하고 있는 택배는 그간 했던 일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기저기 쏘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특별히 누구와 마음을 맞추지 않아도 되고, 더구나 초록 풍선은 다른 택배회사에 비해 배달 건당 떨어지는 수입도 짭짤했다. 배달구역이 정해져 있어 매일 같은 곳을 쏘다녀야 한다는 것만 빼면 이렇다 할 불만은 없었다.
개새끼. 명수는 한바탕 욕설을 쏟다 말고 달자와 눈이 마주쳤다. 달자의 눈빛이 따뜻했다. 달자와 눈이 마주치자 명수는 얼른 눈길을 피했다. 제발 좀 죽어. 수도 없이 애원이라도 하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멈칫했다.
간이침대에 앉아 있던 명수가 킁킁대며 코를 벌름거렸다. 달자가 대변을 본 모양이었다. 명수는 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문자를 보내고는 달자를 향해 돌아섰다. 씨발, 가라 가! 잘 먹고 잘살아라. 명수는 중얼거리며 달자가 덮고 있는 이불을 휙 걷었다. 이불 속에 갇혔던 역한 냄새가 한꺼번에 공기 위로 떠올랐다. 명수는 잠시 망설이다 주춤주춤 달자의 환의 바지를 무릎 아래로 내렸다. 기저귀 아래 달자의 허벅지가 드러났다. 오른쪽 허벅지보다 왼쪽 허벅지가 눈에 띄게 가늘었다. 대퇴골을 감싼 푸석푸석한 살은 축 늘어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기저귀를 열자 시큼하고 역겨운 냄새가 더욱 맹렬한 기세로 명수의 콧구멍을 공격했다. 기저귀뿐만 아니라 가랑이 사이에도 묽은 변이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달자가 오른쪽 다리를 꿈틀거리며 안으로 접자 변이 허벅지며 종아리에도 묻었다.
“에이 씨, 가만 좀 있어!”
명수는 달자의 다리를 잡았다. 달자는 눈을 감고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는지 파란 슬리퍼가 다가와 커튼을 쳐 주었다. 명수가 힐끗 돌아봤다.
명수는 침대 옆 휴지통에 기저귀를 내동댕이치듯 던지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에서 꽥꽥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물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명수가 젖은 손을 털며 밖으로 나왔다.
“똥 기저귀 여그 버리면 안 돼요!”
파란 슬리퍼가 기다렸다는 듯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쏘아붙였다.
“휴지통에 안 버리면 어디 버려?”
“시래기 밥만 처묵었소? 왜 말끝마다 반말이요?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뭐? 미친놈?”
“아아, 그만 하소. 시끄럽소.”
파란 슬리퍼는 더는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명수가 씩씩대며 파란 슬리퍼를 따라가려는데, 달자가 명수를 불렀다.
“명수야”
"뭐? 뭐라고 했어?”
달자가 명수를 명수라고 부른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명수는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더 일그러뜨릴 뿐이었다.
정아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달자의 치매를 명수에게 알린 것이 지난 초가을이었다. 오늘 검사결과 나왔는데, 치매 맞대. 정아는 별 놀랄 일도 아니라는 듯 건조하게 말했다. 언제부터인지 달자는 옷을 입은 채로 대소변을 누곤 했다. 어쩔 수 없이 정아는 달자에게 기저귀를 채웠다. 달자는 기저귀가 답답한지, 정아의 눈을 피해 귀신같이 기저귀를 벗어 던지고는 이불이며 침대에 그냥 볼일을 봤다. 보다 못한 정아는 밤이면 기저귀를 벗지 못하게 허리에 포장용 테이프를 칭칭 동여매 기저귀를 단단히 고정했다. 나름 머리를 써 보지만 달자에게는 항상 역부족이었다.
정아가 늦은 밤 겨우 잠이 들면, 초저녁부터 늘어지게 잔 달자는 부스스 깨어났다. 그때부터 조용히 ‘사고 치기’를 시작했다. 한 손으로 기저귀 바깥을 싸고 있는 비닐 막을 뚫고 분비물을 흡수하기 위해 충전제로 들어있는 솜을 야금야금 뜯어 침대 밑으로 버리는 것이었다. 달자의 ‘기저귀 분해 기술’은 그야말로 귀신 곡할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오른손이 비교적 자유롭다고 하지만, 한 손으로 허리에 칭칭 붙여놓은 테이프를 푸는 일이며, 더욱 놀라운 것은 성인용 기저귀 한 개가 산산이 분해되는 동안 부스럭대는 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정아의 머리카락이며 어깨, 간이침대 주위에는 갈기갈기 찢긴 기저귀의 솜이나 비닐이 하얀 눈처럼 쌓여있었다.
더 난감한 일은 대변을 본 후 바로 치우지 못했을 때 발생했다.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벽에 똥칠하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정아는 온몸으로 실감했다. 날이 갈수록 달자와 정아의 신경전은 치열해갔다. 번번이 정아가 그 신경전에 밀렸고, 사방에 묻은 똥을 닦아내고 똥 묻은 빨래를 하는 일, 주위의 눈총을 받는 일은 정아의 몫이었다. 달자의 치매는 장난 그 이상이었다. 병은 달자가 앓고 있는데, 시들시들 말라가는 것은 정아 쪽이었다.
명수는 잠든 달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달자의 얼굴에 희미하게 명지의 얼굴이 겹쳐졌다. 명지는 달자의 큰아들로 명수보다 다섯 살 위였다. 명지를 향한 달자의 사랑은 유별났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재래시장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던 달자가 인터넷 보급으로 서점의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는데도 끝까지 서점 운영을 고집했던 이유는 순전히 큰아들 때문이었다. 책벌레인 명지에게 책 하나만큼은 원 없이 보게 할 수 있다는 것과 명지가 서점에 앉아 책에 머리를 박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달자의 유일한 낙이기도 했다. 대신 명수에게 달자는 한 없이 관대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금전적인 문제를 제외한 관대였다. 명수가 돈 달라는 소리만 하지 않으면 집에 들어오든 말든 공부하든 말든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좋게 말해 관대고 달리 말하면 무관심이었다.
복도에서 덜컹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식당 아주머니가 바퀴가 달린 커다란 배식 카를 끌고 왔다. 병실 앞에서 식판을 나누어 주었다. 명수는 침대 머리를 올려 달자를 앉혔다.
“밥 먹어.”
명수는 수저를 건네다 말고 달자 맞은편 침대 모서리에 주저앉았다. 치매가 진행된 뒤로 달자는 숟가락질도 잊었는지 밥을 떠먹여 줘야 했다. 명수는 밥을 뜬 숟가락을 달자의 입 가까이 가져갔다. 웬일인지 달자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밥 먹어! 명수가 한차례 호통을 치자 달자는 마지못해 입을 벌렸다. 달자는 밥을 씹는 둥 마는 둥 삼켰고, 입술 가장자리로 미처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한 밥알이 삐져나왔다. 음식물을 삼키기 무섭게 명수가 다시 밥숟가락을 달자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달자는 우물거리며 음식물을 삼키다 기침을 했다. 입안에서 하얀 밥알이 뿜어져 명수의 얼굴을 덮쳤다.
“에이 씨”
명수는 휴지로 제 얼굴에 묻은 밥알을 털어냈다. 달자의 입 가장자리로 침이 흥건하게 매달렸다가 주르륵 떨어졌다. 명수는 제 얼굴을 닦던 휴지로 달자의 침을 닦았다. 명수는 다시 밥을 떠먹였다. 달자가 다시 쿨룩거렸다. 기침은 점점 더 맹렬해지더니 급기야 달자는 꽥꽥거리며 목을 잡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그래?”
명수는 어쩔 줄 몰라 달자를 잡고 흔들었다. 그때 파란 슬리퍼가 다가와 달자를 엎드리게 한 다음 입에 손가락을 넣어 토하게 했다. 달자의 입속에서 씹다 만 밥알이 와르르 튀어나왔다. 파란 슬리퍼는 달자의 등을 몇 차례 두드린 다음 달자의 입속을 확인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달자는 한차례 기침을 더 쏟아내고는 잠잠해졌다.
정아는 친구들이 모여 있는 인사동으로 가려다 발길을 돌렸다. 병원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호수공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녁인데도 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연거푸 정아를 앞질러 지나갔다.
고등학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겨울방학에도 정아는 지금처럼 혼자 호수공원을 걷고 있었다. 겨울이었고 늦은 시간이라 공원은 한적했다. 정아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독립을 해서 어떻게든 혼자 살아 볼 계획이었다. 막상 졸업이 가까워지자 독립이라는 것이 막막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달자에게 더는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달자나 명지, 명수 모두 정아를 객식구가 아닌 진짜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알지만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볼이 얼어서 먹먹해질 정도로 공원을 배회하던 정아가 집에 도착했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시장기가 몰려왔다. 라면에 밥까지 말아 먹고 나자 살 것 같았다. 배도 부르고 얼었던 몸이 풀리자 졸음이 쏟아졌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죽은 엄마가 자꾸만 정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정아는 엄마의 손을 뿌리쳤다. 뿌리치려고 할수록 손을 잡은 힘이 아프게 손목을 조여 왔다. 정아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비명은 목구멍 속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엄마의 손을 젖 먹던 힘을 다해 깨물었다. 그때 악 하는 남자의 비명이 들렸다. 정아가 눈을 떴을 때 명지가 정아의 배 위에 올라타고는 한 손으로 정아의 입을 막고 있었다.
그날 이후 명지는 손을 치료하기 위해 외과병원에 다녀야 했고, 정아는 독립을 목전에 앞두고 꿈을 접어야 했다. 정아는 자연스럽게 달자의 며느리, 명지의 아내, 명수의 형수가 되었다. 사실 달자도 명지도 명수도 정아가 명지의 아내로 사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것은 정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침묵했다.
다음 해 봄 명수와 정아는 나란히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명지와 정아는 나란히 결혼식을 올렸다. 졸업 후 명수는 집에 붙어있지 않았다. 일을 핑계로 아예 밖에서 생활했다. 달자는 그런 명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테이블에 빈 소주병 두 개가 나란히 서 있고 손도 대지 않은 해장국은 이미 식어 있었다. 명수는 마지막 잔을 들어 입속으로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원으로 걸어가는 걸음이 자꾸 휘청거렸다. 병실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침대마다 커튼이 처져있었다. 명수는 커튼을 열자마자 간이침대에 엎어지듯 쓰러졌다.
파란 슬리퍼는 몸을 뒤척이다 등 뒤에 뭔가에 묵직한 것을 느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옆에 시커먼 덩치가 누워있었다. 조심스럽게 덩치를 살폈다. 덩치가 숨을 쉴 때마다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도둑이야!”
파란 슬리퍼는 있는 힘껏 고함을 지르며 천천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자고 있던 간병인들이 놀라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고 병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간이침대에는 여전히 시커먼 덩치가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당직 간호사가 뛰어와 병실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불빛에 덩치의 얼굴이 드러났다. 명수였다. 그때 파란 슬리퍼가 손잡이가 긴 빗자루를 들고 들어왔다. 명수의 등을 빗자루로 힘껏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윽! 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렸다. 명수가 꿈틀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파란 슬리퍼가 태연하게 빗자루를 들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간병인들이 피식피식 웃으며 명수를 봤다.
“뭐? 구경났어?”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명수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쏘아붙였다. 간병인들은 짧은 해프닝이 아쉽다는 듯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명수는 간이침대에 머리를 박고 다시 잠을 청했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머리 위에서 들리는 달자의 숨소리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자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불덩이였다. 명수가 비상벨을 누르자 간호사가 달려오고, 잠시 후 당직 의사가 왔다.
“아침에 사진을 찍어 봐야 정확한 것은 알겠지만, 폐렴인 것 같습니다.”
청진을 마친 당직의 목소리에 졸음이 잔뜩 묻어있었다.
“멀쩡한 사람도 그렇게 퍼 먹이면 탈 나.”
파란 슬리퍼가 간이침대에 누운 체 큰 소리로 말했다.
“야! 밥이랑 폐렴이랑 뭔 상관이야!”
명수가 따지듯 소리를 질렀다.
“저런 무식한 놈!”
파란 슬리퍼가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연하곤란이 있어 식사 시 주의해야 합니다. 자칫 음식물이 기관지로 들어가 폐렴을 일으킬 수 있거든요. 폐렴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의사의 말에 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액을 맞고 삼십 분쯤 지나자 달자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달자의 침상에 엎드려 명수도 잠이 들었다.
꿈속에 명수는 숲 속을 걷고 있었다. 숲 속에 하얀 새 두 마리가 명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다 사라졌다. 명수는 새를 찾아 이리저리 뛰었다. 허공을 향해 손을 휘휘 저으며 눈을 떴다. 꿈속에서 얼마나 뛰었는지 온몸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문득 달자도 정아도 새처럼 날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명치끝이 뻐근해졌다.
명수와 정아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만난 첫 짝꿍이었다. 명수는 예쁜 정아가 자기의 짝이라는 것이 흐뭇했다.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명수의 행동은 거칠었다. 정아의 학용품을 제멋대로 가져가거나 책에 낙서해서 정아를 울리기 일쑤였다. 정아는 명수에게 시달리다 못해 학교 가기를 거부했다. 그 일로 정아 엄마는 달자를 만나자고 했다. 그 만남이 인연이 되어 엄마들은 친하게 지냈다.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져 친자매처럼 지냈는데, 두 사람 모두 남편과 일찍 사별한 아픔이 있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정아의 엄마는 자신이 폐암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달자에게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정아를 부탁한다며 울었다. 달자는 두말 하지 않고 정아를 맡아 키우겠다며 정아 엄마를 다독였다. 그런 일이 있고 두 달 후 달자는 정아의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왔다.
“딸이 생겨 너무 좋아.”
달자는 정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달자는 진심으로 정아를 좋아했다. 정아를 달자보다 더 반겼던 사람은 명수였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달자는 정아를 친자식처럼 대했다. 아들만 둘 있는 집에 달자마저 출근하고 나면 자연 소소한 집안일은 정아의 몫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 정아에게 미안했던 달자는 용돈만은 넉넉하게 줬다. 명수가 달라고 하면 이유를 들어 보기도 전에 없다고 소리부터 지르는 달자가 정아에게는 달랐다. 자연 명수는 정아에게 빌붙어 갈취 아닌 갈취를 했는데, 정아는 그런 명수에게 자신의 용돈을 두말없이 나누어 주었다. 명수와 정아는 다들 부러워하는 친남매처럼 지냈다. 그런 관계는 정아가 형수가 되면서 깨어졌다. 명수는 한 번도 정아를 형수로 대하지 않았다. 어쩌다 집에 와도 명수는 정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나마 집에 오는 날 대부분은 만취해 있었다. 휘청휘청 걸어 들어와 아무 구석에나 쓰러져 자고는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정아는 벤치에 앉아 공원을 둘러보았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밤의 공원은 적막했다. 정아는 달자의 재활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달자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 혼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면 결혼 생활을 접고 독립하리라 마음먹었다. 그것이 명지를 위해서도 최선이라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이상이 없다는데 지금껏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은 자신이 명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명지의 짝으로 자신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대기업에 근무하던 명지는 미국지사 발령을 받아 근무지로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명지의 사망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정아는 또다시 독립의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정아와 명수는 명지의 죽음을 달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명수가 죽고 일 년 후 명수는 집으로 들어왔다. 명수는 택배회사 지입을 알아보는 중이라 했다.
“갑자기 그만한 돈이 어딨어.”
정아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1톤 탑차가 있어야 취직할 수 있단 말이야.”
“그 돈은 안 돼. 명지 오빠 사망보상금으로 받은 돈은 엄마 입원비로 써야 해.”
정아가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차! 하는 생각에 힐끗 잠든 달자를 봤다. 다행히 달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야, 내가 많이 벌어 엄마 입원비 내면 되잖아. 그럼 집을 파냐?”
“집을 팔든 말든 그 돈은 안 돼.”
결국, 명수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1톤 탑차를 샀다.
그날 이후 달자는 재활치료를 거부했다. 재활치료를 건성으로 받자 마비가 온 왼쪽이 점점 굳어 갔다. 지팡이를 의지해 걷기도 하던 달자는 아예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 후 치매가 찾아왔고, 치매는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달자는 정아를 괴롭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명수가 그랬던 것처럼 정아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러나 정아는 알고 있었다. 매일 밤 기저귀를 뜯으며 웅얼거리던 달자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웅얼거림을 정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 딸 정아, 미안하다. 산목숨 끊을 수도 없고, 이제 너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네가 떠나도 아무도 널 욕하지 않아. 때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을 못해, 괴롭히는 것으로 사랑을 대신 말하기도 한단다.”
괴롭힐수록 정아가 정을 떼고 떠나기 쉬울 거라 생각하는 것도. 매일 밤 기저귀를 뜯어내며 가슴에서 명지를 정아를 뜯어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정아는 천천히 벤치에서 일어났다. 허기가 몰려왔다. 따뜻한 라면 국물이 생각났다. 천천히 걸으며 꺼두었던 전화기의 전원을 눌렀다. 몇 통의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명수의 문자를 열었다. ‘엄마 똥 쌌어!’ 순간 정아는 팡 터지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웃음소리가 어두운 공원에 꽃잎처럼 피어올랐다. 웃음 때문인지 두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끝.
장마가 끝난 뒤의 공기는 스치는 것은 무엇이든 태워버릴 기세다. 화물칸에 ‘초록 풍선’ 녹색 로고가 선명한 1톤 탑차가 장미아파트 안으로 진입한다. 차가 멈추자 운전석 문이 열리며 같은 로고가 찍힌 모자를 비스듬히 눌러쓴 명수가 뛰어내렸다. 명수는 배달 전표를 뒤적이며 화물칸에서 커다란 상자를 찾아 전표와 대조한 후 옆구리에 끼고 아파트 현관을 향했다. 현관문을 밀자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감쌌다. 명수는 모자를 벗어 머리를 흔들고 다시 모자를 눌러썼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점검 중’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명수는 잠시 안내문을 쏘아보다 계단을 향해 몸을 돌렸다. 목적지는 15층. 명수는 두 계단씩 성큼성큼 걸었다. 5층에 오르자 이마에 땀이 맺혔다.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며 5층 출입문을 힐끗 쳐다봤다. 명수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번졌다.
며칠 전이었다. 배달할 물건을 들고 초인종을 누르자 5층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나왔다. 여자의 등 뒤로 햇살이 쏟아졌고 하늘거리는 원피스 속에 감추어진 여자의 나신이 눈 안 가득 들어왔다. 눈이 번쩍 떨어졌다. 흥, 얼굴은 아닌데 쭉쭉 빵빵 몸매는 예술이군. 명수는 힐끔힐끔 여자를 훔쳐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명수는 유난히 더위를 타는 체질이지만, 가끔은 예기치 않게 눈이 호사하는 여름을 좋아했다.
실실 웃으며 계단을 오르는 명수의 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흰색 나이키 운동화가 사뿐히 9층을 지나갔다. 그때 전화기에서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치는 싸이의 흥겨운 노래가 울렸다. 전화기 화면에 ‘정’이 찍혀있었다. 왜?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았다. 빨리 와! 엄마가 위독해. 정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명수의 고막을 찌르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야! 야! 명수는 정아의 목소리를 잡으려는 듯 소리쳤다. 짧은 말이 복도 벽에 부딪혀 발버둥 치며 울렸다. 명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며칠 전 통화할 때만 해도 정아는 달자의 상태에 대해 그만그만하다고 말했었다. 명수는 배달할 물건을 옆구리에 낀 채 돌아섰다.
정아는 6층 병실 복도 끝 창가에 서 있었다. 시선이 빌딩 입구에 고정되어있다. 정아 옆 대형 에어컨이 찬바람을 토해내자, 정아는 얇은 하늘색 카디건 앞섶을 여몄다. 파마한 지 오래된 듯 웨이브가 풀린 긴 머리카락이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병원 입구에는 24시 편의점에서 펼쳐놓은 파라솔이 놓여있고, 환의를 입은 남자 셋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명수의 차가 편의점을 지나 건물 주차장으로 향하는 것이 정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정아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흘리며 돌아섰다.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지나 계단을 향했다.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계단을 내려갔다.
명수는 6층 병원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병원은 빌딩 3, 5, 6층을 사용하는 120 침상의 재활전문병원이었다. 병실 문 앞에 휠체어가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명수는 좁은 복도에 늘어선 휠체어를 보자 숨이 막히는 듯했다. 병실은 대부분 6인실이었다. 6인실이라지만 환자 한 명에 한 명의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딸려 있으니, 정확하게 말하면 12인실이었다. 창과 입구를 가리지 않도록 양쪽 벽을 따라 가로로 3개의 환자용 침대가 놓여있고, 그 밑에 간병인이 사용하는 간이침대가 놓여있었다. 침대와 침대 사이에는 개인사물을 수납할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지만, 물품을 수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었다. 침대 주위에 종이상자가 층층이 쌓여있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침대마다 설치한 커튼레일에는 세탁한 옷가지들이 불규칙하게 널려있었다. 어수선한 병실을 보며 명수는 난민촌을 떠올렸다.
병실에는 간병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명수는 인사도 없이 병실 안으로 걸어갔다. 간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명수의 뒤통수를 따라 움직였다. 병실 안쪽 창가 침대에 달자가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이불을 목까지 덮고 미동도 없이 잠든 모습이 마치 미라 같았다. 명수는 달자의 얼굴에 자신의 귀를 가까이 댔다. 규칙적인 숨소리를 확인한 후 명수는 병실을 둘러봤다. 간병인들은 얼른 명수의 시선을 피해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 보호자 어디 갔어요?”
명수는 정아의 부재를 추궁이라도 하듯 퉁명스럽게 물었다.
“갔어요. 금일부터는 아들이 간병할 거라지?”
간병인들 중에 제일 젊은 간병인 여자가 파란 슬리퍼를 탁탁 털며 말했다. 파란 슬리퍼는 연변에서 온 조선족으로 정아보다 두 살 위였다. 두 사람이 친구처럼 지낸다는 것을 명수도 알고 있었다.
"아들? 아들 누구?”
“누군 누구 간디.”
파란 슬리퍼가 턱으로 재빠르게 명수를 가리켰다.
“아이쿠, 벌써 작업치료 시간이네."
파란 슬리퍼는 자기가 돌보는 환자를 서둘러 휠체어에 앉힌 다음 휠체어를 밀며 밖으로 나갔다. 다른 간병인들도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명수는 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들리기 무섭게 정아가 전화를 받았다.
“야! 도련님아, 잘 해봐라. 난 간다.”
정아의 목소리가 경쾌하고 푸르게 고막을 울렸다.
“야! 뭘 잘해. 어디야?”
명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다. 명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한 달 전 일이 떠올랐다. 늦은 밤 명수가 달자를 찾았을 때였다. 달자는 고르게 코를 골며 누워 있는데, 간이침상에 잠들어 있어야 할 정아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명수는 덜컥 겁이 났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명수는 명지도 없는 지금 정아에게 못할 짓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정아에게 미안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아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입이 탔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그때 파라솔 아래 구부정하게 휜 정아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야!”
명수는 반가운 마음에 정아의 어깨를 툭 쳤다. 가벼운 터치에도 정아의 어깨가 심하게 흔들렸다.
“야! 안자고 뭐 하냐?”
명수는 정아 앞에 놓여있는 맥주 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정아의 어깨를 쳤다. 정아의 상체가 다시 흔들렸다.
“산다는 게 뭘까?”
고개를 드는 정아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순간 명수는 가슴을 가로지르며 전기뱀장어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씨발 겨울도 아닌데 왜 이리 추워, 야! 안주는 없냐!”
정아가 말없이 일어나 병원으로 걸어갔다. 명수는 급하게 맥주를 비우고 정아를 따랐다. 정아가 간이침대에 등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눕는 것을 보고 명수는 병원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명수의 다리가 자꾸 휘청거렸다.
산다는 게 뭘까? 정아의 말이 자꾸 명수의 고막을 울렸다. 산다는 것?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주름진 얼굴과 뒤틀린 몸뚱이. 이게 바로 사는 거야. 빌어먹을! 명수는 중얼거리며 달자 머리맡에 놓인 사각 휴지통을 들어 병실 바닥에 패대기쳤다. 퍽 소리에 잠을 깬 달자가 명수를 봤다. 순간 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달자는 몇 해 전 뇌출혈로 쓰러진 후 왼쪽 수족을 쓰지 못하는 편마비가 왔다. 편마비가 온 후로 달자의 표정으로는 감정 변화를 읽을 수 없었다. 아프거나, 화내거나, 웃을 때나, 울 때도 얼굴은 항상 똑같은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명지, 명지”
달자가 어눌하지만 맑은 음성으로 말했다.
“명지! 명지! 명지! 씨발, 언제까지 명지 타령만 할 거야?”
달자가 오른손을 명수 앞으로 내밀었다.
“명지고 뭐고 정아 어디 갔어?”
정아라는 말에 달자는 고개를 돌려 명수의 시선을 피했다. 그때 명수의 주머니에서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다. 전화기 화면에 ‘초록 풍선’이 찍혀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방금 오겠다고 한 사람이 안 온다고 사무실로 전화가 오고 난리잖아.”
전화를 받자마자 소장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다짜고짜 소리부터 내질렀다.
“죄송합니다. 엄마가 위독해서 병원에…….”
명수의 목소리가 다시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갈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배달은 하고 가야지! 이게 뭐 애들 장난이야?”
씨발 새끼, 그래 평생 배달이나 하고 살아라. 명수는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오려는 말을 겨우 삼켰다. 쏟아내지 못한 말이 목울대를 찌르기라도 했는지 목구멍이 뻐근했다.
“우리 직업은 에……거시기 뭐냐, 빠른 스피드와 약속이 생명인 거 몰라? 어떻게 할 거야?”
소장은 언제나 빠른 스피드와 약속을 강조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껏 초록 풍선이 택배 업계에서 최고의 물류량을 자랑하는 것이 모두 자기의 투철한 직업 정신 때문이라는 듯 거드름을 피울 때면 명수는 전날 먹은 밥알이 다 곤두서곤 했다.
“내일 아침 일찍…….”
명수는 말꼬리를 흐렸다.
“어이, 긴말 필요 없고 이런 식으로 일할 거면 그만둬! 일할 사람 널렸어.”
소장은 명수의 말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명수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다행히 지금 하고 있는 택배는 그간 했던 일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기저기 쏘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특별히 누구와 마음을 맞추지 않아도 되고, 더구나 초록 풍선은 다른 택배회사에 비해 배달 건당 떨어지는 수입도 짭짤했다. 배달구역이 정해져 있어 매일 같은 곳을 쏘다녀야 한다는 것만 빼면 이렇다 할 불만은 없었다.
개새끼. 명수는 한바탕 욕설을 쏟다 말고 달자와 눈이 마주쳤다. 달자의 눈빛이 따뜻했다. 달자와 눈이 마주치자 명수는 얼른 눈길을 피했다. 제발 좀 죽어. 수도 없이 애원이라도 하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멈칫했다.
간이침대에 앉아 있던 명수가 킁킁대며 코를 벌름거렸다. 달자가 대변을 본 모양이었다. 명수는 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문자를 보내고는 달자를 향해 돌아섰다. 씨발, 가라 가! 잘 먹고 잘살아라. 명수는 중얼거리며 달자가 덮고 있는 이불을 휙 걷었다. 이불 속에 갇혔던 역한 냄새가 한꺼번에 공기 위로 떠올랐다. 명수는 잠시 망설이다 주춤주춤 달자의 환의 바지를 무릎 아래로 내렸다. 기저귀 아래 달자의 허벅지가 드러났다. 오른쪽 허벅지보다 왼쪽 허벅지가 눈에 띄게 가늘었다. 대퇴골을 감싼 푸석푸석한 살은 축 늘어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기저귀를 열자 시큼하고 역겨운 냄새가 더욱 맹렬한 기세로 명수의 콧구멍을 공격했다. 기저귀뿐만 아니라 가랑이 사이에도 묽은 변이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달자가 오른쪽 다리를 꿈틀거리며 안으로 접자 변이 허벅지며 종아리에도 묻었다.
“에이 씨, 가만 좀 있어!”
명수는 달자의 다리를 잡았다. 달자는 눈을 감고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는지 파란 슬리퍼가 다가와 커튼을 쳐 주었다. 명수가 힐끗 돌아봤다.
명수는 침대 옆 휴지통에 기저귀를 내동댕이치듯 던지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에서 꽥꽥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물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명수가 젖은 손을 털며 밖으로 나왔다.
“똥 기저귀 여그 버리면 안 돼요!”
파란 슬리퍼가 기다렸다는 듯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쏘아붙였다.
“휴지통에 안 버리면 어디 버려?”
“시래기 밥만 처묵었소? 왜 말끝마다 반말이요?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뭐? 미친놈?”
“아아, 그만 하소. 시끄럽소.”
파란 슬리퍼는 더는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명수가 씩씩대며 파란 슬리퍼를 따라가려는데, 달자가 명수를 불렀다.
“명수야”
"뭐? 뭐라고 했어?”
달자가 명수를 명수라고 부른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명수는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더 일그러뜨릴 뿐이었다.
정아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달자의 치매를 명수에게 알린 것이 지난 초가을이었다. 오늘 검사결과 나왔는데, 치매 맞대. 정아는 별 놀랄 일도 아니라는 듯 건조하게 말했다. 언제부터인지 달자는 옷을 입은 채로 대소변을 누곤 했다. 어쩔 수 없이 정아는 달자에게 기저귀를 채웠다. 달자는 기저귀가 답답한지, 정아의 눈을 피해 귀신같이 기저귀를 벗어 던지고는 이불이며 침대에 그냥 볼일을 봤다. 보다 못한 정아는 밤이면 기저귀를 벗지 못하게 허리에 포장용 테이프를 칭칭 동여매 기저귀를 단단히 고정했다. 나름 머리를 써 보지만 달자에게는 항상 역부족이었다.
정아가 늦은 밤 겨우 잠이 들면, 초저녁부터 늘어지게 잔 달자는 부스스 깨어났다. 그때부터 조용히 ‘사고 치기’를 시작했다. 한 손으로 기저귀 바깥을 싸고 있는 비닐 막을 뚫고 분비물을 흡수하기 위해 충전제로 들어있는 솜을 야금야금 뜯어 침대 밑으로 버리는 것이었다. 달자의 ‘기저귀 분해 기술’은 그야말로 귀신 곡할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오른손이 비교적 자유롭다고 하지만, 한 손으로 허리에 칭칭 붙여놓은 테이프를 푸는 일이며, 더욱 놀라운 것은 성인용 기저귀 한 개가 산산이 분해되는 동안 부스럭대는 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정아의 머리카락이며 어깨, 간이침대 주위에는 갈기갈기 찢긴 기저귀의 솜이나 비닐이 하얀 눈처럼 쌓여있었다.
더 난감한 일은 대변을 본 후 바로 치우지 못했을 때 발생했다.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벽에 똥칠하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정아는 온몸으로 실감했다. 날이 갈수록 달자와 정아의 신경전은 치열해갔다. 번번이 정아가 그 신경전에 밀렸고, 사방에 묻은 똥을 닦아내고 똥 묻은 빨래를 하는 일, 주위의 눈총을 받는 일은 정아의 몫이었다. 달자의 치매는 장난 그 이상이었다. 병은 달자가 앓고 있는데, 시들시들 말라가는 것은 정아 쪽이었다.
명수는 잠든 달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달자의 얼굴에 희미하게 명지의 얼굴이 겹쳐졌다. 명지는 달자의 큰아들로 명수보다 다섯 살 위였다. 명지를 향한 달자의 사랑은 유별났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재래시장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던 달자가 인터넷 보급으로 서점의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는데도 끝까지 서점 운영을 고집했던 이유는 순전히 큰아들 때문이었다. 책벌레인 명지에게 책 하나만큼은 원 없이 보게 할 수 있다는 것과 명지가 서점에 앉아 책에 머리를 박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달자의 유일한 낙이기도 했다. 대신 명수에게 달자는 한 없이 관대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금전적인 문제를 제외한 관대였다. 명수가 돈 달라는 소리만 하지 않으면 집에 들어오든 말든 공부하든 말든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좋게 말해 관대고 달리 말하면 무관심이었다.
복도에서 덜컹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식당 아주머니가 바퀴가 달린 커다란 배식 카를 끌고 왔다. 병실 앞에서 식판을 나누어 주었다. 명수는 침대 머리를 올려 달자를 앉혔다.
“밥 먹어.”
명수는 수저를 건네다 말고 달자 맞은편 침대 모서리에 주저앉았다. 치매가 진행된 뒤로 달자는 숟가락질도 잊었는지 밥을 떠먹여 줘야 했다. 명수는 밥을 뜬 숟가락을 달자의 입 가까이 가져갔다. 웬일인지 달자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밥 먹어! 명수가 한차례 호통을 치자 달자는 마지못해 입을 벌렸다. 달자는 밥을 씹는 둥 마는 둥 삼켰고, 입술 가장자리로 미처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한 밥알이 삐져나왔다. 음식물을 삼키기 무섭게 명수가 다시 밥숟가락을 달자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달자는 우물거리며 음식물을 삼키다 기침을 했다. 입안에서 하얀 밥알이 뿜어져 명수의 얼굴을 덮쳤다.
“에이 씨”
명수는 휴지로 제 얼굴에 묻은 밥알을 털어냈다. 달자의 입 가장자리로 침이 흥건하게 매달렸다가 주르륵 떨어졌다. 명수는 제 얼굴을 닦던 휴지로 달자의 침을 닦았다. 명수는 다시 밥을 떠먹였다. 달자가 다시 쿨룩거렸다. 기침은 점점 더 맹렬해지더니 급기야 달자는 꽥꽥거리며 목을 잡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그래?”
명수는 어쩔 줄 몰라 달자를 잡고 흔들었다. 그때 파란 슬리퍼가 다가와 달자를 엎드리게 한 다음 입에 손가락을 넣어 토하게 했다. 달자의 입속에서 씹다 만 밥알이 와르르 튀어나왔다. 파란 슬리퍼는 달자의 등을 몇 차례 두드린 다음 달자의 입속을 확인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달자는 한차례 기침을 더 쏟아내고는 잠잠해졌다.
정아는 친구들이 모여 있는 인사동으로 가려다 발길을 돌렸다. 병원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호수공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녁인데도 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연거푸 정아를 앞질러 지나갔다.
고등학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겨울방학에도 정아는 지금처럼 혼자 호수공원을 걷고 있었다. 겨울이었고 늦은 시간이라 공원은 한적했다. 정아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독립을 해서 어떻게든 혼자 살아 볼 계획이었다. 막상 졸업이 가까워지자 독립이라는 것이 막막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달자에게 더는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달자나 명지, 명수 모두 정아를 객식구가 아닌 진짜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알지만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볼이 얼어서 먹먹해질 정도로 공원을 배회하던 정아가 집에 도착했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시장기가 몰려왔다. 라면에 밥까지 말아 먹고 나자 살 것 같았다. 배도 부르고 얼었던 몸이 풀리자 졸음이 쏟아졌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죽은 엄마가 자꾸만 정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정아는 엄마의 손을 뿌리쳤다. 뿌리치려고 할수록 손을 잡은 힘이 아프게 손목을 조여 왔다. 정아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비명은 목구멍 속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엄마의 손을 젖 먹던 힘을 다해 깨물었다. 그때 악 하는 남자의 비명이 들렸다. 정아가 눈을 떴을 때 명지가 정아의 배 위에 올라타고는 한 손으로 정아의 입을 막고 있었다.
그날 이후 명지는 손을 치료하기 위해 외과병원에 다녀야 했고, 정아는 독립을 목전에 앞두고 꿈을 접어야 했다. 정아는 자연스럽게 달자의 며느리, 명지의 아내, 명수의 형수가 되었다. 사실 달자도 명지도 명수도 정아가 명지의 아내로 사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것은 정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침묵했다.
다음 해 봄 명수와 정아는 나란히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명지와 정아는 나란히 결혼식을 올렸다. 졸업 후 명수는 집에 붙어있지 않았다. 일을 핑계로 아예 밖에서 생활했다. 달자는 그런 명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테이블에 빈 소주병 두 개가 나란히 서 있고 손도 대지 않은 해장국은 이미 식어 있었다. 명수는 마지막 잔을 들어 입속으로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원으로 걸어가는 걸음이 자꾸 휘청거렸다. 병실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침대마다 커튼이 처져있었다. 명수는 커튼을 열자마자 간이침대에 엎어지듯 쓰러졌다.
파란 슬리퍼는 몸을 뒤척이다 등 뒤에 뭔가에 묵직한 것을 느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옆에 시커먼 덩치가 누워있었다. 조심스럽게 덩치를 살폈다. 덩치가 숨을 쉴 때마다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도둑이야!”
파란 슬리퍼는 있는 힘껏 고함을 지르며 천천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자고 있던 간병인들이 놀라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고 병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간이침대에는 여전히 시커먼 덩치가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당직 간호사가 뛰어와 병실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불빛에 덩치의 얼굴이 드러났다. 명수였다. 그때 파란 슬리퍼가 손잡이가 긴 빗자루를 들고 들어왔다. 명수의 등을 빗자루로 힘껏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윽! 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렸다. 명수가 꿈틀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파란 슬리퍼가 태연하게 빗자루를 들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간병인들이 피식피식 웃으며 명수를 봤다.
“뭐? 구경났어?”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명수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쏘아붙였다. 간병인들은 짧은 해프닝이 아쉽다는 듯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명수는 간이침대에 머리를 박고 다시 잠을 청했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머리 위에서 들리는 달자의 숨소리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자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불덩이였다. 명수가 비상벨을 누르자 간호사가 달려오고, 잠시 후 당직 의사가 왔다.
“아침에 사진을 찍어 봐야 정확한 것은 알겠지만, 폐렴인 것 같습니다.”
청진을 마친 당직의 목소리에 졸음이 잔뜩 묻어있었다.
“멀쩡한 사람도 그렇게 퍼 먹이면 탈 나.”
파란 슬리퍼가 간이침대에 누운 체 큰 소리로 말했다.
“야! 밥이랑 폐렴이랑 뭔 상관이야!”
명수가 따지듯 소리를 질렀다.
“저런 무식한 놈!”
파란 슬리퍼가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연하곤란이 있어 식사 시 주의해야 합니다. 자칫 음식물이 기관지로 들어가 폐렴을 일으킬 수 있거든요. 폐렴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의사의 말에 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액을 맞고 삼십 분쯤 지나자 달자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달자의 침상에 엎드려 명수도 잠이 들었다.
꿈속에 명수는 숲 속을 걷고 있었다. 숲 속에 하얀 새 두 마리가 명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다 사라졌다. 명수는 새를 찾아 이리저리 뛰었다. 허공을 향해 손을 휘휘 저으며 눈을 떴다. 꿈속에서 얼마나 뛰었는지 온몸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문득 달자도 정아도 새처럼 날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명치끝이 뻐근해졌다.
명수와 정아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만난 첫 짝꿍이었다. 명수는 예쁜 정아가 자기의 짝이라는 것이 흐뭇했다.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명수의 행동은 거칠었다. 정아의 학용품을 제멋대로 가져가거나 책에 낙서해서 정아를 울리기 일쑤였다. 정아는 명수에게 시달리다 못해 학교 가기를 거부했다. 그 일로 정아 엄마는 달자를 만나자고 했다. 그 만남이 인연이 되어 엄마들은 친하게 지냈다.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져 친자매처럼 지냈는데, 두 사람 모두 남편과 일찍 사별한 아픔이 있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정아의 엄마는 자신이 폐암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달자에게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정아를 부탁한다며 울었다. 달자는 두말 하지 않고 정아를 맡아 키우겠다며 정아 엄마를 다독였다. 그런 일이 있고 두 달 후 달자는 정아의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왔다.
“딸이 생겨 너무 좋아.”
달자는 정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달자는 진심으로 정아를 좋아했다. 정아를 달자보다 더 반겼던 사람은 명수였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달자는 정아를 친자식처럼 대했다. 아들만 둘 있는 집에 달자마저 출근하고 나면 자연 소소한 집안일은 정아의 몫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 정아에게 미안했던 달자는 용돈만은 넉넉하게 줬다. 명수가 달라고 하면 이유를 들어 보기도 전에 없다고 소리부터 지르는 달자가 정아에게는 달랐다. 자연 명수는 정아에게 빌붙어 갈취 아닌 갈취를 했는데, 정아는 그런 명수에게 자신의 용돈을 두말없이 나누어 주었다. 명수와 정아는 다들 부러워하는 친남매처럼 지냈다. 그런 관계는 정아가 형수가 되면서 깨어졌다. 명수는 한 번도 정아를 형수로 대하지 않았다. 어쩌다 집에 와도 명수는 정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나마 집에 오는 날 대부분은 만취해 있었다. 휘청휘청 걸어 들어와 아무 구석에나 쓰러져 자고는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정아는 벤치에 앉아 공원을 둘러보았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밤의 공원은 적막했다. 정아는 달자의 재활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달자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 혼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면 결혼 생활을 접고 독립하리라 마음먹었다. 그것이 명지를 위해서도 최선이라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이상이 없다는데 지금껏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은 자신이 명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명지의 짝으로 자신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대기업에 근무하던 명지는 미국지사 발령을 받아 근무지로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명지의 사망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정아는 또다시 독립의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정아와 명수는 명지의 죽음을 달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명수가 죽고 일 년 후 명수는 집으로 들어왔다. 명수는 택배회사 지입을 알아보는 중이라 했다.
“갑자기 그만한 돈이 어딨어.”
정아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1톤 탑차가 있어야 취직할 수 있단 말이야.”
“그 돈은 안 돼. 명지 오빠 사망보상금으로 받은 돈은 엄마 입원비로 써야 해.”
정아가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차! 하는 생각에 힐끗 잠든 달자를 봤다. 다행히 달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야, 내가 많이 벌어 엄마 입원비 내면 되잖아. 그럼 집을 파냐?”
“집을 팔든 말든 그 돈은 안 돼.”
결국, 명수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1톤 탑차를 샀다.
그날 이후 달자는 재활치료를 거부했다. 재활치료를 건성으로 받자 마비가 온 왼쪽이 점점 굳어 갔다. 지팡이를 의지해 걷기도 하던 달자는 아예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 후 치매가 찾아왔고, 치매는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달자는 정아를 괴롭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명수가 그랬던 것처럼 정아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러나 정아는 알고 있었다. 매일 밤 기저귀를 뜯으며 웅얼거리던 달자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웅얼거림을 정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 딸 정아, 미안하다. 산목숨 끊을 수도 없고, 이제 너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네가 떠나도 아무도 널 욕하지 않아. 때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을 못해, 괴롭히는 것으로 사랑을 대신 말하기도 한단다.”
괴롭힐수록 정아가 정을 떼고 떠나기 쉬울 거라 생각하는 것도. 매일 밤 기저귀를 뜯어내며 가슴에서 명지를 정아를 뜯어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정아는 천천히 벤치에서 일어났다. 허기가 몰려왔다. 따뜻한 라면 국물이 생각났다. 천천히 걸으며 꺼두었던 전화기의 전원을 눌렀다. 몇 통의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명수의 문자를 열었다. ‘엄마 똥 쌌어!’ 순간 정아는 팡 터지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웃음소리가 어두운 공원에 꽃잎처럼 피어올랐다. 웃음 때문인지 두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