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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간호문학상 소설 당선작
아줌마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11-12-15 오전 09:55:41
- 황유진 (부산해동병원)

할머니에게도 분명 이름은 있었다. 침상 머리맡에 붙어 있는 이름표가 그 사실을 잘 인식시켜주었지만, 나는 그 사람을 ‘아줌마’라 불렀다. 다른 간호사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 했지만 나는 그저 조금 그가 젊어 보여 그렇게 부른다고만 대답했다.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이 작은 동네의 작은 요양 병원. 아줌마가 이 병원에 온 것은 내가 2년 차가 된 지 얼마 안 되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dementia'라는 병명으로 들어 온 아줌마와 나는 간호사와 환자라는 명목으로 만났다. 아니, 재회했다.

여기 오는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런 것처럼 아줌마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나를 기억하기는커녕 장소, 시간, 사람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는 질문에도 횡설수설했다.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지금 아줌마가 나를 기억한다 한들, 나로서는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될 것 같지는 않았기에.

“딸내미, 딸내미.”

아줌마가 나를 그렇게 불렀다. 딱히 나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그렇게 불렀으니.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월 속에 잠들어 있던 아득한 기억이 내 가슴 속에서 천천히 피어올랐다.

15년 전의 겨울, 중학생이었던 나는 어머니와 집을 나섰다. 눈이 하얗게 내리던 날이었다. 오랫동안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수중에 조금 있던 돈을 전부 털어 나와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행선지는 외가댁이었다.

어머니는 평소 외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외조부는 본인이 하던 사업이 쫄딱 망한 이후에도, 부인을 병으로 잃은 후에도 그 불같은 성격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보고도 항상 미련하다며 욕을 퍼부었다. 그렇게 모진 욕을 듣고도 향한 곳은 결국 외갓집이었으니 어머니도 얼마나 답답한 마음이었을까. 어리기만 했던 나는 그저 어머니랑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로 따라나섰다.

온기라고는 없는 허름한 주택.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그 집은 마치 귀신이라도 나올 듯 무서웠다. 또 방 구석구석에는 제 역할을 잃은 공구들이 군데군데 굴러다녔다. 과거 커다란 공장을 운영했다는 와할아버지가 찬란한 시절을 잊지 못한 흔적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커먼 공구들과 기계들 사이에서 걸어 나온 외할아버지의 반응은 싸늘했다.

“와 왔노?”

“…….”

“가시나야, 니 눈까리 니가 찔렀재. 내가 니 시집갈 때 금마 인상 더럽다고 얼마나 반대했노? 그런데 니가 무슨 낯짝으로 여까지 와 지랄이고? 아는 와 데리고 왔노? 올라카믄 니 혼자 와서 콱 뒤지뿌든가. 아 새끼 고생시키그로.”

집 나온, 돈 없는 여자는 세상의 죄인이 된다. 내 눈에는 어머니가 그렇게 보였다. 아무 말 하지 않는 어머니 뒤에 숨어 나는 찔끔찔끔 울었다. 어머니가 죄인이 되니 나 역시 죄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보소, 힘들게 온 딸내미한테 와 그리 말하요.”

귀신 사는 소굴 같은 집의 어느 구석에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외할머니는 아니었다. 외할머니는 몇 년 전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외할아버지의 옆에는 한 50대로 보이는 아줌마가 서 있었다.

어머니는 그 사람의 정체를 아는 건지 내게 인사를 시켰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내 손을 잡고 아줌마가 안으로 들어갔다. 싸늘한 방 한구석에 놓은 작은 전기장판 위에 날 앉히며 그가 말했다.

“마이 춥제? 여 와서 한 숨 좀 자그레이.”

“…….”

“한 숨 푹 자고 일어나면, 느그 할아부지도 화를 풀기라. 그러니 어여 자그레이.”

아줌마가 날 두고 나간 후 나는 장판 위에서 졸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막막했지만, 그래도 장판은 따뜻했다. 쿰쿰한 냄새가 났지만, 그것마저도 어쩌면 그때의 나에게는 단 하나의 온기였다.

‘아줌마’는 키가 작고 벌어진 몸에 항상 허름한 몸빼바지를 입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쩐지 말투가 이북 쪽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금방이라도 싸구려 시장바닥에서 천원 주고 건저 온 듯 한 복장을 하고, 아줌마는 뻔질나게 외가댁을 드나들었다. 그렇게 오는 그의 손에는 항상 검은색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안에는 감자든, 고구마든,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양식이 한 가득 들어 있었다. 집에 들어와 그 양식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 것이 아줌마의 일과였다.

“새끼 딸내미, 어서 오니라. 여 와서 감자 함 무 보래이.”

아줌마는 항상 어머니를 ‘딸내미’, 나를 ‘작은 딸내미’라고 불렀다. 이름을 부르는 것 보단 그 쪽이 편한 모양이었다. 따로 불평은 하지 않았지만 그 호칭이 싫었다. 집 나간 어머니를 따라 포악한 외할아버지에게 얹혀사는 내 처지를 자꾸 인식시키는 것 같았다. 물론 거지같은 아줌마의 존재도 당연히 싫었다. 작은 방 구석에 숨어 나오지 않는 나를 아줌마는 끝까지 불렀다.

“새끼 딸내미, 어서 나와서 무보래. 무야 힘이 나제.”

하도 불러서 마지못해 나가면, 외할아버지와 아줌마, 어머니와 나. 이렇게 이상한 4명의 구조가 형성되어 다 같이 삶은 감자를 먹었다. 외할아버지의 눈초리에 목구멍이 막혀서 더 이상 들어가지도 않는데, 아줌마는 끝까지 내 손에 감자를 두어 개 더 쥐어주었다.

아줌마는 가끔 어디서 돈이 난 건지 비싼 오렌지도 한 아름 들고 왔다. 외할아버지가 오렌지를 좋아한다는 건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래도 감자나 고구마보다는 오렌지가 먹기가 편했다. 구석에서 오렌지를 흘려가며 먹을 때면 아줌마는 더러운 행주로 내 손을 닦아주곤 했다.

저 아줌마가 누구냐고 어머니한테 물었을 때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 물으니 어머니는 그 사람이 할아버지의 애인이라고 했다. 늙으면 그냥 아는 할매 할배들이 외로워서 같이 잘 지낸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어디서 그 아줌마를 알게 되었는지는 어머니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어찌됐든 아줌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다녀갔다.

아줌마가 할아버지와 하는 대화는 별 것 없었다. 설탕을 가득 넣은 커피를 사발에 후루룩 마시며 귀신이 보인다는 말도 했다가, 강구 새끼를 몇 마리 잡았네 마네 하는 이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왜 아줌마가 돈도 없고 늙은 영감한테 아줌마가 붙어 있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썩 니 새끼 데리고 꺼지라.”

아줌마를 알게 된 지 석 달. 석 달 만에 외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석 달이면 이혼을 하던, 다시 돌아가던 결판을 내라고 매몰차게 내쫓는 그의 성화에 어머니와 나는 다시 짐을 쌌다. 무작정 거리로 나왔지만 수중에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고시원을 전전하다가 어느 허름한 단칸방을 하나 구했다.

코딱지만 한 방, 그리고 구석에는 커다란 바퀴벌레가 짝을 지어 날아다녔다. 어머니는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몸을 막대기로 사정없이 때렸다. 때리지 않으니 숨을 못 쉬겠다고 했다. 나는 막대기가 철썩철썩 살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막대기를 뺐고 뺐다가 옆에서 매일 울었다. 그 소리가 청신경을 타고 몸에 들어와 숨통을 옭아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옆에서 우는 나를 어머니는 3일 만에 아버지한테 보내 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도망 가 버렸다.

아버지는 나를 친할머니에게 맡겼다. 할머니 역시 결코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할머니 밑에서 나는 숨도 안 쉬고 사는 듯 했다. 진정한 눈칫밥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될 즈음,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즈음 연락이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바로 그 아줌마였다.

‘지금 니 어무이가 락스를 마시뿟데이. 락스를 먹어서, 비운에 왔는디, 지금 치료받고 있는데….’

사실 락스를 마셨다는 말 보다는 지금 어머니가 그 아줌마와 함께 지낸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찾아가 보니 어머니는 아줌마가 운영하는 여관방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실수로 락스를 마신 어머니는 다행히 무사히 치료받았고,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어머니와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가 구해준 작은 아파트에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된 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같이 살게 된 이후로 어머니는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외가댁에서 나온 어머니를 아줌마가 자신의 여관에 가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신세진 이야기를 하며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좁아터진, 곰팡이 터진 여관방에서 어머니는 무전취식하면서 멍청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방세라도 내고 싶어도 돈도 없었고, 이혼 소송이니 뭐니 한다고 설치는 아버지에 맞서 싸운다고 완전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딸마저도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좌절감에 매일 매일 울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줌마는 홀로 울다 지쳐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꼭꼭 무언가라도 먹을 것을 들고 왔다. 퍽퍽한 감자든, 고구마든, 하다못해 푹 퍼진 라면이라도 꼭 끓여서 가져왔다. 그리고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늘 달래주었다. 벼룩신문도 가져와 이일 저일 권하면서 뭐라도 해보라고 매일 권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혼해주고 위자료 받아오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뭐 할라고 이혼 해줄끼고. 그 나쁜 놈이 좋다고 새장가 들게 할끼가? 마 여기서 내랑 같이 동고동락 하믄서 지내제이. 힘든 처지에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믄 안 조켔나?

같이 산 이후로 우리 모녀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일했다. 어머니는 파출부도 하고, 식당에서 일도 하면서 나를 뒷바라지 해주었다. 나 역시 아르바이트와 학교를 병행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어머니와 같이 살지 못하던 그 시절에 대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통장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줌마한테 돈을 줘야겠다.”

오래간만에 듣는 이름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 그 ‘아줌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나요?”

“백만 원.”

우리에게 백만 원은 큰돈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꼭 돈을 줘야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줘도 아깝지 않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어머니에게 있어 아줌마는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많이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옆에서 당연히 그래야 할 딸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도망갔는데. 내게는 그 돈을 주지 말라고 할 자격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돈을 쥐어주어야 하는데. 죄인인 나는 어머니에게 돈 주고 싶으면 주라고, 그렇게만 대답했다. 어머니는 내 허락을 얻자마자 수소문해서 그 아줌마를 만나러 갔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아줌마를 만나고 온 어머니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신세를 갚았다고 후련해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신경질만 버럭버럭 냈다. 며칠 후에서야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며 꾹꾹 눌러 담았던 말을 풀어놓았다.
몇 년 만에 불러낸 아줌마는 여전히 낡은 몸빼 바지에 더러운 배낭을 멘 채였다.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근처의 분식집에 들어가 된장찌개를 시키며 그때 신세 진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물 봉투도 내밀었다.

아줌마는 처음에는 조금 주저하다가 돈 봉투를 챙겨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이제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아줌마는 갑자기 자신의 옛날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그냥 신세 타령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얼른 자리를 뜨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했다.

내가 막내아들을 뱄을 때 망할 남편이 바람이 났어. 십 원 한 장 안 벌어주던 인간이 어디서 기집을 하나 알아가지고 그나마 노름해가지고 조금 푼 돈 생기면 그 가스나한테 다 갖다 쳐 주는 게 아이갓나. 내가 그라지 말라꼬 바가지를 긁었드만 아궁이의 부지깽이로 내를 쑤시드라. 다리 몽디가 뿌사지드록 내를 두들겨 패도 처음에는 내가 빌었어. 그래도 아 새끼들 아부진데 처음에는 살아 볼라꼬 노력이라도 해야 안 하겄나. 그래도 그 인간 고거는 눈도 깜짝 안 했데이. 나중에는 아예 고 가기사나랑 살겠다고 집을 나가 부렸제.

아를 쥑일 수는 업꼬, 내 아들 업고 참말로 열심히 일했데이. 종이도 줍고, 병도 모으고, 딸은 회비를 못 내가 수업 시간에 몇 번을 쫓기 나드만 마 중학교부터 학교를 안 나가부렸다. 고 가스나는 어디서 또 발랑 까진 것만 배워가 어디 취직한다고 깝죽대드만 뜩 임신을 해와가꼬. 고 이후로는 지 애비처럼 집 나가고 안 돌아와 지금까지도 어디서 어떻게 쳐 자빠져 사는가 모르겠다.

어쩌다 들리는 말로 여관 같은거 하나 하믄, 방세 받고 살기가 괘얀타캐서 악착같이 돈 모아서 여관을 하나 얻었제. 그래봤자 코딱가리만한 방에 내 비는 새고, 다 썩어 있는 건물이라도 그나마 푼돈이라도 방세 받으니 그나마 조금 편했데이. 그치만 내 거서 험한 꼴도 마이 봤다. 방 빌려 줘 놨드만 안에서 목을 메기도 하고. 약을 묵기도 하고. 어떤 망할 년은 아도 낳았다, 막내아들도 거서 목매고 죽었어. 사는 게 재미 읍따꼬 평소에 씨부렁대더니만 결국 그 사단이 났어.

내 언니가 어디 무슨 동에 동장인데, 내보고 지금이라도 망할 인간이랑 이혼하고 내가 이혼녀가 되믄 동사무소에 신청해서 돈을 한 달에 얼마씩 받아무울 수 있다카드라. 그래도 내는 이혼 안 해 줬다. 내는 아직도 금마하고 엄연한 부부다. 말라꼬 금마가 자유롭게 지랄하고 댕기도록 내가 이혼 도장 찍어줄끼고?

딸내미가 내를 잘 이해해 주니 하는 말인디, 내 딸내미 아버지가 옛날에 커다란 공장 돌리고 윽수로 부자였다카길래, 어디 꼼쳐둔 돈이 좀 있을끼라 생각했다. 어디 떨어질 콩고물이 쪼매라도 있는 줄 알고 붙어 댕겼는디, 딸내미 아부지 개털이대? 내가 고 영감 성질 받아주며 얼마나 열심히 댕겼는데, 이랄 수가 있나? 진짜 내 그렇게 봉사하고도 한 푼도 못 받았데이.
내 이래 힘들게 살았는데 좀 보상 받아야 안 카겠나. 내 솔직히 별 기대도 안 했지만, 딸내미가 내를 위해 준다 하니 영감한테 봉사한고 수고료로 받는다 생각하고 고맙게 받을끼구마. 딸내미도 마 마음 추스르고 딸이랑 마음 맞춰서 잘 살그레이.

돈 한 푼 노리고 늙은 영감한테 접근했다가 콩고물 떨어지는 게 없자 발길 끊어놓고, 나중에는 자기 불쌍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며 합리화 시킨다며 어머니는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생각 할수록 사기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아무리 세상 힘들게 살아도 그렇게 얻어 처먹으려고 아무 영감한테나 붙을 수 있나? 그런 짓을 하면 벌 받는기라. 이렇게 중얼거리며 어머니는 계속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신세 진 거는 신세 진 거니까 돈은 줬다. 이제 이걸로 그 아줌마하곤 다신 얼굴 안 볼끼다.”

화가 난 목소리. 하지만 그 속에서는 분노보다는 섭섭함이 묻어나왔다.
험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동안 어머니는 이 더러운 세상에 지쳐있었다. 매질하는 남편과 돈 없어서 멸시받는 사회. 등골 빠지도록 일 해 봐야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족쇄에 늘 우울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유일하게, 정말 단 하나뿐인 따뜻함이 바로 아줌마였다. 어머니는 어쩌면 힘들 때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던 그 아줌마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게 다 속 시커먼 꿍꿍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머니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세상은 그래도 조금은 따뜻할 것이라고 믿던 어머니의 순정은 그 솔직한 폭로에 다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어머니는 지금 화를 내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감정표현이 서투른 어머니는 서글픈 마음의 외침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줌마를 두둔하지도, 그렇다고 어머니를 위로하지도 않았다. 다만 오래 전 아줌마가 ‘새끼 딸내미’라고 부르던 때를 기억했다. 푹 퍼진 몸매에 낡은 몸빼 바지를 기억했다. 그리고 왜 어머니한테 그런 말을 해버렸는지, 야속하면서도 착잡했다. 그저 입 다물고 돈이나 받아갔으면 서로서로 좋은 마음으로 끝났을 일을.

“아줌마, 다음 생애에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 호강하고 사이소.”

씁쓸한 마음을 안고 헤어질 때 어머니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아줌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는 마 다음 생에는 안 태어날란다.”

어머니의 분노를 마지막으로 아줌마는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 후 15년이라는 세월동안 나는 대학에 진학했고, 간호사가 되었고, 병원에 취직해 일을 계속했다. 어머니는 이런 저런 허드렛일을 계속하다가 내가 취직함과 동시에 일을 손에서 놓았다. 내 뒷바라지를 10년이나 죽기 살기로 했으니 이제 쉬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싶으면 그러라고 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아닌 ‘살아내는’ 일에 몰두한 나는 언젠가부터 옛날의 기억을 잊고 살았다. 어머니하고도 그런 대화를 하는 일이 줄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폭삭 늙어버린 아줌마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기억났다.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그 우울한 표정이 떠올라 덩달아 나도 우울해졌다.

아줌마의 병원 차트에는 (보호1종)이라는 표시가 적혀 있었다. 빌어먹을 남편과 이혼 해주기 싫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호 신청도 포기하겠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정말 보호1종이 되어버리다니. 그 동안 이혼을 당한건지, 한 건지, 아니면 정말 그나마 연락되던 자식들이 홀라당 내던져버렸는지. 그 깊은 사정을 나는 알 수 없었다.

“자, 어르신들. 오늘의 노래는 ‘새타령’입니다. 같이 따라 해보시고….”

주에 한 번 있는 노래 교실. 자원봉사자들이 매번 치매 노인들을 위해 노래를 가르쳐주는 시간이다. 넓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노인들은 저마다 노래를 따라 하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다. 눈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무리와는 떨어져 홀로 우두커니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가 보였다.

“아줌마, 여기서 뭐 해요?”

세월이 흐른 만큼 쭈글쭈글 늙어버린 아줌마는 날 보고 마냥 방실방실 웃었다. 물로 그 웃음에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똥오줌 못 가린다고 간병인들이 구박할 때도, 방을 못 찾아 헤맬 때도 아줌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방실 웃었으니까.

“아줌마, 노래 교실 참여 안하고 뭐하세요?”

“노래? 노래, 노래….”

무리에 섞이기는 싫은 건지, 아줌마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바깥을 보는 그 옆모습에 다시 옛날 기억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그깟 돈 백 만원에 그렇게 어머니를 상처 입혔어야 했냐고. 그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었냐고. 따지고 싶었던 시기가 있었다. 결국 우리에게 잘 해주었던 것도 그런 시커먼 속내 때문이었냐고, 물어보고 싶던 때가 있었다. 지금 물어보면 혹시 대답해줄까.

“아줌마.”

하지만 나는….

“내가, 휠체어 밀어 줄게요.”

“응.”

“갑갑하니까, 우리 바깥 공기 콧구멍에 넣고 와요.”

나는 물어보는 것 대신, 휠체어를 앞으로 밀었다.
병원의 입구 문을 같이 나섰다. 탁한 실내 공기에 억눌려 있던 탓인지, 바깥에 나온 아줌마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빨았다 뺐다를 반복했다. 건물 옆에 있는 주차장을 한 바퀴 다 도니 아줌마가 좀 추웠는지 몸을 웅크리는 시늉을 했다. 돌아갈 시간임을 인식하고 휠체어를 입구 쪽으로 돌리는데, 무언가 차가운 것이 볼에 닿았다. 아줌마가 앞으로 손을 뻗으며 애기처럼 웃었다.

“눈, 눈.”

아줌마가 다시 박수를 쳤다. 나는 그저 우두커니 하늘만 보고 있었다. 무언가 깊이 쌓여 있던 응어리가 이 하얀 눈으로 분해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는 내 손에 아줌마의 휘어버린 손가락이 닿았다.

“새끼 딸내미.”

어머니는 왜 그 날 그렇게 화를 냈을까. 물론 배신감도 느꼈고, 섭섭한 것도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건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쩌면 어머니는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이 아줌마의 모습이 마치 미래의 모습 같아서. 세상에 지쳐 꺾인 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그랬던 이 사람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를 느낄 수 있어서. 자신만은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화를 냈던 것이 아닐까.

갑자기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의 슬픔이 이제 와서 새삼 마음에 와 닿은 것도 아니고, 아줌마가 야속해서도 아니었다. 내 지나온 세월과 지나간 기억들, 그것들을 모두 한 번 펼쳐보고 나니 그저 가슴이 먹먹해질 뿐.

하얀 눈이 내렸다. 세상은 점점 하얗게 변해만 갔다. 그리고 내 기억에도 눈이 쌓였다. 퍽퍽하던 고구마도, 감자도. 달지 않았던 오렌지도 모두 지워졌다. 백만 원 주고도 씁쓸해 했던 어머니의 얼굴도 점점 잊혀졌다. 어둡던 내 어린 시절의 한 구석을 깊게 자리 잡던 어느 사기꾼 아줌마의 모습도 아득히 멀어져갔다. 지근 내 눈앞에는 그저 더러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악하던, 어느 한 여자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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