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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간호문학상 소설 가작
엄마의 가출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0-12-23 오후 15:58:57
- 서지은 (인하대 간호학과 4학년)
나는 어린 시절 종종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꿈속에서 나는 깨었을 때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마치 현실처럼 겪어야 했고,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울다가 깨어나곤 했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란 엄마가 떠나가는 일이었다. 엄마의 부재(不在)가 나에게는 가장 충격적이고 두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한 번이라도 우리 삼남매를 버렸거나, 혹은 그런 시도라도 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막연히 어린 아이들이 한 번쯤 하는, “우리 엄마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해“하는 울음 섞인 투정이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말로 칭얼댈 때 나는 꿈으로 칭얼댔을 뿐이라는 게 성인이 되고나서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여하튼 꿈의 내용은 이러했다. 어딘지 모를 낯선 장소에 나와 오빠, 언니가 있었다. 우리 삼남매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콧물이 입에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우리 남매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바쁜 걸음으로 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서럽게 울부짖어도 엄마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엄마를 붙잡을 마음에 일어나 뛰어보려 해도 어쩐 일인지 바닥에 주저앉은 두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미웠던 것은 엄마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두 다리가 아니라 오빠와 언니였다. 떠나가는 엄마를 붙잡을 생각은 안하고 울기만 하는 두 사람이 밉고 야속해 더 큰 소리로 울다가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악몽의 마지막 수순 이었다.
땀범벅이 된 얼굴로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엄마가 안방에서 잘 자고 있나 확인하는 일이었다. 안방 미닫이문을 살짝 열어 엄마가 있는 지를 본 뒤엔 방으로 돌아와 쌔근쌔근 잘 자고 있는 오빠와 언니의 볼을 힘껏 꼬집어 주고는 다시 잠을 청하고는 했다.
나는 이런 꿈을 일곱 살 무렵부터 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춘기가 올 때쯤 인가는 점점 그 횟수가 뜸해지는가 싶더니 스무 살 이후부터는 아예 꾸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나 자신이 느끼기에도 제법 어른이 됐다 싶을 때 어린 시절 악몽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겁을 냈던 꿈속의 일이 어른이 된 나에게는 더 이상 두렵거나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더 이상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가 된 것에 나는 씁쓸함을 느끼며 입맛을 다시곤 했던 일이다.
그런데 나는 어젯밤 십 육 년 만에 그 꿈을 다시 꾸었다. 꿈속의 나는 여전히 일곱 살의 어린 모습이었고 오빠와 언니 역시 내가 기억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내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꿈은 그때와 똑같은 공포로 나를 몰아넣었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카락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고, 눈에서 흘러내린 찝질한 소금기가 입가를 적셨다.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의 예감은 정말, 잘도 들어맞았다.
엄마 가출 첫 날
오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날 오후의 일이었다. 새벽에 꾼 꿈 때문에 잠을 설친데다가, 만화가라는 직업의 특징상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주로 하는 나에게 늦은 오후까지의 단잠은 그리 낯선 일도 아니었다. 시끄럽게 귓속을 울리는 휴대폰 진동음에 가까스로 잠을 깬 나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해영이냐, 오빠다
엄마를 모시고 사는 오빠의 전화였다. 어제 꾼 꿈이 찜찜했던 터라 그렇지 않아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볼 생각이었다.
- 응, 오빠. 엄마는?
- 그게 말이다, 해영아….
가슴이 철렁했다. 그 짧은 시간에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 엄마가 왜? 무슨 일 있어?
- 아니 그게 아니구…저기…
다급한 내 목소리에 오빠는 당황한 모양이었다.
- 저기, 혹시 어머니 너희 집에 가셨니? 하긴 네 목소리 들어보니 그건 아닌 거 같다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를 흘끗 보니 이제 막 여섯시가 지나 있었다.
- 난 또, 엄마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놀랬잖아. 아직 안 들어오셨어? 어디 인천이모네라도 가셨겠지 뭐.
- 응, 그냥 얘기도 없이 나가셨길래, 알았다. 집에 좀 들러라.
오빠와의 가슴 철렁한 전화를 끊고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샤워를 하고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저녁을 준비해 먹은 뒤 메일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오빠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 여보세…
- 해영아, 큰일이다. 어머니가 없어지셨어. 이모님 댁도 안 오셨다는데, 빨리 이쪽으로 좀 와야겠어, 얼른.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없어지셨다고?
오빠의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성북동에 살고 있는 오빠의 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열시를 반 정도 넘어서고 있었고, 일요일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해 차는 제법 빨리 달릴 수 있었다. 고급 주택가에 자리한 이층 양옥집으로 들어선 나는 현관 입구부터 습관대로 엄마를 부르기 시작했다.
- 엄마 없어지셨다니까.
엄마를 부르는 내 소리에 역시 전화를 받고 온 듯한 언니 미영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처럼 급하게 연락을 받고 왔을 텐데 언니는 깔끔한 모습이었다.
- 엄마가 없어지셨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 몰라. 새언니가 빨래 개켜둔 거 정리하려고 엄마 서랍 열었는데 텅텅 비어있더랜다, 글쎄. 엄마 묵주랑 성경책도 다 없어졌대. 인천 이모네도 안 오셨다는데 어딜 가셨겠니? 아니 도대체 집에만 있는 사람이 뭐 한거야. 노인네 나가시는 거 하나 보지도 못하고.
언니는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새언니가 엄마를 소홀히 대한 것에 대한 대단한 증거라도 잡은 사람처럼 굴었다. 새언니는 나를 맞으러 나왔다가 언니의 힐난에 죄인이라도 된 듯이 다시 부엌으로 사라졌다. 언니의 짧은 설명으로 상황을 파악해 보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안방 문을 열고 오빠가 점퍼 소매에 팔을 꿰차며 방을 나섰다.
- 어디가려구?
- 경찰서에 가봐야지. 실종 신고를 해야 될 거 아냐.
오빠는 사뭇 비장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오빠가 집을 나선 뒤 나는 새언니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는데 얘기는 대충 이러하다. 엄마가 새벽녘에 집을 나가셨는데 최근에 들어서 새벽기도를 다니셨기에 오늘도 그러신 줄 알았다, 새벽기도 후에 인천 사는 이모님 댁에 들러 점심도 먹고 놀다 오신 적이 있어서 그러신 줄 알고 일부러 전화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아홉시가 넘고 차 끊길 시간이 다되어도 돌아오시지 않아 전화해보니 이모님 댁은 가시지 않았고, 마침 빨래 정리를 하다 보니 엄마 서랍이 비어있어서 집을 나가신 걸 알게 되었다, 라는 것이 이야기의 전모다. 새언니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언니는 다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아니, 그래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게 노인들 몸이고, 머리인데 무슨 정신으로 나가신 줄 알고 연락도 안 해봐. 그러다 무슨 일 생기실지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드나, 내참.
언니의 말에 원체 마음이 약한 새언니는 송구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언니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다. 언니 말대로 엄마 나이가 오늘하고 내일 다른 나이라지만 아직까지 정신을 놓으시거나 어디 가서 일 당하시기엔 머리가 맑고 정정하신 분이었다.
게다가 젊었을 적부터 꼼꼼하고 조심성 많으셨던 분 아닌가. 그런 쪽으로는 생각이 가지 않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옷가지와 성경책 묵주가 없어진 것도 이상했다. 나의 생각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우치고 있을 즈음 오빠가 돌아왔다. 열이 벌겋게 올라 화가 난 듯한 얼굴이었다.
- 실종신고는 했어? 경찰이 뭐래?
- 후….
- 왜 그래? 뭐가 어떻게 된 건데 그래?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오빠는 간신히 분을 삭이는 듯 말을 이었다. 꽤나 분했는지 숨소리가 거친 것이 점잖은 평소 오빠의 모습은 아니었다.
- 아니, 그 망할 경찰들이 어머니가 없어졌다니까 한다는 소리가 실종이 아니라는 거야. 노인 가출은 경찰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대. 가출이라니 그게 말이 되냐. 우리 어머니가 뭐가 아쉬워서 가출을 하겠냐고. 가출 절대 아니고 실종이라니까, 실종 당할 줄 알고 옷가지 챙겨서 나갔을 리가 없지 않겠냐고 묻더라. 참내 기가 막혀서. 아니 우리 어머니가 뭐가 부족해서 자식, 손자 다 버리고 집을 나가시겠냐, 안 그러냐 미영아?
- 어머, 어머. 그 썩을 놈의 경찰들 진짜 개소리하고 있네. 우리 엄마가 가출을 왜해. 뭣도 모르면서 사람 속만 뒤집네. 됐어. 사립 탐정을 고용하던지 다른 공공기간에 의뢰하던지 엄마 꼭 찾을 수 있어.
언니 미영의 맞장구에 오빠의 화는 더욱 거세져 결국 얌전하던 오빠의 입에서 씨팔 망할놈의 경찰새끼들이라는 말까지 듣고서야 나는 오빠의 집을 나섰다. 사실 나도 경찰들처럼 엄마의 실종보다는 가출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그러나 언니와 오빠는 엄마는 절대 가출할 이유가 없다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나는 알 것도 같았다. 엄마가 가출한 이유를.
엄마 가출 이틀째
다음날 오후, 나는 오빠의 집으로 향했다. 마감도 이미 넘긴 상태라 일에 쫒기지 않을 수 있었다. 설령 일이 있었다 해도 손에 잡힐 리는 없겠지만.
어젯밤 잠들기 전 최종적으로 엄마의 가출로 마음을 정한 나는, 차라리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엄마 스스로의 의지로 나가셨다는 점에서 다소 안심이 되었으나, 통장이나 돈 될 만한 물건을 들고 나가시지 않았다는 점은 크게 염려가 되었다.
오빠의 집에 도착하자 집에는 새언니 혼자 있었다. 오빠와 언니는 사립 탐정을 알아보겠다고 집을 나섰다 하고,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간 상태였다. 체면구기는 일을 질색하는 오빠답게 자식들에게 행여나 자신의 어머니가 책잡힐세라 할머니는 기도원에 잠시 들어가셨다고 했단다. 참 오빠다운 행동이었다.
커피를 끓인다는 새언니를 뒤로하곤 혼자 엄마의 방을 들어가 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만 정작 있어야 할 사람은 떠나버린, 주인 잃은 엄마의 방…. 방도 참 엄마다웠다. 환갑을 한참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당신 방 청소는 스스로 하실 정도로 유난히 깔끔하신 분이었다. 장식장 위에 있어야 할아버지의 사진이 없는 걸 보니 아마 가지고 나가신 듯 했다.
살아있을 때 한 번도 보지 못한 나의 아버지는 엄마를 만나 그 시절 흔하게 들려오는 사랑이야기처럼 결혼식도 못 올리고 오직 사랑만으로 초라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절 모든 가난한 남성의 대부분이 이루지도 못하고 미수에 그칠 대단한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았듯 아버지도 예외 없이 포부만은 대단한 것이어서 엄마는 아버지를 퍽 믿었더랜다.
그러나 실상 아버지는 그런 큰 포부를 담기엔 워낙 그릇이 작은 사내라서 결국 포부고 뭐고 잘 먹지도 못해 원체 비실한 체력에 그만 폐병에 걸려 돌아가시게 된다. 그땐 이미 8살이 된 오빠와 6살이 된 언니, 그리고 뱃속에 자라고 있던 나까지 모두 삼남매를 세상에 남기신 후였다.
이것은 훗날 이모에게서 들은 얘기이지만, 아버지의 죽음 후 죽을힘을 다해 온갖 고생을 이겨온 엄마를 본 이모로서는 어느 정도 아빠에 대한 편견이 들어간 이야기일 것이다. 기껏해야 8-9년이나 살았을까. 자식도 두고 떠나는 엄마는 남편은 데려갈 마음이 어디서 생겼을지, 혼자 가출하려니 조금은 쓸쓸했나 싶어 가슴 한쪽이 싸해지는 기분이다.
조심스레 장롱을 열어보니 옷 이외에 별다른 소지품은 없는 듯했다. 다만 옷장 한 구석에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듯한 옷 두 세 벌이 케이스가 씌워진 채 걸려 있었다. 검소한 엄마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고가의 옷이었는데 아마도 오빠가 갖다 놓은 듯 했다. 갑자기 속에서 부아가 치밀면서 오빠에게 화가 났다.
오빠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점잖고 덕 많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항상 그 노력을 위해 희생해야 되는 건 주변 사람들이었다. 아마 이 옷들도 분명 오빠가 듣기 좋은 소리로 엄마를 설득해서 억지로 떠안긴 옷일 것이다. 그리고 이 옷들의 목적은 부모에게 좋은 옷도 척척 사 입히는 능력 있고 효성스러운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오빠는 어릴 적부터 머리가 참 영리했다.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하는 진부한 표현이 오빠를 위해 생긴 것처럼 그 말 많고 더러운 동네에서 참 빛이 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사방에서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가난에 맞서 싸워야 했다. 여자 혼자 힘으로 세 남매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오빠는 머리가 커갈수록 영특해졌고, 영특한 아이답게 너무 빨리 자신이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어서는 이 동네를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이 스스로 돌파구를 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빠는 동네를 벗어나 시내로 나갔다. 지금에 이르러서 생각해보면 왜 꼭 지독히도 가난한 곳 가까이에는 지독히도 부유한 사람들이 살았던 건지. 오빠는 시내를 통틀어 가장 잘 살던 모신문사 사장이란 사람의 집을 찾아갔다. 그곳 가정부에게 몇날 며칠을 울고불고 떼를 쓰니, 이를 본 사장이 오빠를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오빠는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을 입양해 달라고 말했고, 그날 돌아온 것은 어머니의 회초리와 봉투에 든 얼마간의 돈이었다.
엄마는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항상 돌아오는 것은 화난 음성이나 험한 말이 아닌 회초리와, 세상이 무너진 듯한 엄마의 얼굴이었다. 우리 삼남매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후부터 오빠는 자신을 믿기로 했는지 어쨌는지 미친 듯이 공부했다. 원체 머리도 좋았고 본인이 노력도 하는 만큼 오빠는 굉장한 우등생으로 성장했다.
한 가지 변한 점이 있다면 오빠는 그 뒤로 남들의 시선을 이상하리만치 의식했다. 제법 남자 티가 난다싶은 사춘기 무렵부터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엄마를 어머니라 높여 부르고, 학교에선 모범생 가정에선 착실한 맏아들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아니 그렇게 보이기 위해 작고 소소한 일부터 큰일까지, 모두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위해 사는 사람 같았다.
방바닥에 내동댕이친 옷들 말고도 안쪽 장롱에 이런 옷들이 즐비한 것을 알고 있다. 아마 매장 직원에게 우리 어머니 갖다드릴 거라고 하며 사와서는 입으시지도 않을 것을 아니 입으시지 못할 것을 알면서 장롱에 억지로 넣었겠지, 혹은 원하지도 않는 엄마를 억지로 데려가 매장에서 인형처럼 이것저것 입혀보고, 사람들의 존경어린 시선을 받으며 늙으신 노모를 모시는 효성 지극한 아들로 자신을 포장하고 한껏 기뻐했겠지, 머릿속에 안 봐도 뻔한 그림들이 스쳐갔다.
엄마가 가출한 것에 대해 오빠의 잘못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가출을 결심하기 전 엄마가 느꼈을 기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무척 힘이 든다는 것이다.
옷을 제자리에 걸어두고 새언니와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오빠와 언니가 돌아왔다. 일이 잘 풀렸는지 어쨌는지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았다.
- 어떻게 됐어?
- 응, 잘된 거 같아, 얘. 차라리 경찰에 안 맡긴 게 더 나은 것 같아. 지금 그쪽으로 꽤 유명한 사립탐정 찾아서 고용했어. 한 일주일내로 엄마 찾을테구 그럼 모시고 오면 되지.
언니는 신이 난 듯이 말했다. 오빠 역시 어제와는 사뭇 다른 밝은 표정이었다. 말은 쉬웠다 찾아서 모시고 오면 된다니. 늦은 저녁 겸 간소한 상이 차려졌고, 우리 삼남매가 둘러앉았다. 이렇게 둘러앉기도 참 간만의 일이었다. 어릴 적에도 이렇게 작은 상에 셋이 옹기종기 붙어 앉아서 엄마가 차려놓고 간 밥을 참 맛있게도 먹었었다.
- 오빠, 우리 어릴 때 생각난다. 그때도 이런 작은 상이었는데.
- 얘, 그때 뭐 생각할 거라고 있겠니. 상만 작았니? 밥도 쪼끔, 반찬 가짓수도 쪼끔. 아우, 난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배가 고파.
언니는 그때의 기억이라곤 배고픈 일밖에 없었나 보다. 하긴, 그만한 나이에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라는 게 뭐가 있을 수 있을까. 춥고 배고프고 졸린 기억들, 몸이 힘들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언니에게 일깨워 주고 싶은 과거가 있다. 나는 툭 쏘듯 내뱉었다.
- 왜 배고픈 일밖에 없어. 언니 야반도주한 얘기도 있잖아
언니의 부산했던 젓가락질이 멈춘다.
- 야, 이 기집애야. 이십년도 더 지난 얘기를 왜 하는 거야 갑자기.
- 이십년도 더 지났으니까 하는 거 아니우.
- 난 다 잊었어.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아니다. 언니가 잊었을 리가 없었다. 그때의 그 질주가 쭉 이어져 지금의 언니 인생에도 고스란히 연결되어 있는데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언니는 끊임없이 애정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생계에 바쁜 엄마가 자식에게 줘야할 적정량의 애정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증상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나와 오빠는 그런 애정결핍적 증상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릴 적의 언니는 부족한 애정을 동네 어른들에게서 채웠다. 예쁘고 야무진 아이로 이집 저집에서 애정을 얻었다. 나이가 더 들어서는 또래의 남자들에게서 부족한 애정을 보충받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언니가 평생 남자들과의 애증관계를 지속하며 살아온 것은.
제법 애들답지 않은 연애를 하던 언니는 열여덟 살 때 남자와 야반도주를 했다. 밤중에 그 깜깜한 골목을 뛰어 내려갈 때 아마도 언니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평생 애정에 굶주리며 살지 않아도 될 거라고 말이다. 언니는 한 달 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두 달 뒤 다른 남자와 야반도주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삼 개월 만에 돌아왔다.
정신을 좀 차렸는가 싶을 정도로 반년을 잠잠히 보낸 언니는 다시 남자와 떠났다. 이번에는 야반도주도 아니었다. 훤한 대낮에 남자의 팔짱을 끼고 걸어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것은 일 년 뒤의 일이었다. 언니는 엄마에게 돌아와 자랑스레 말했다.
- 엄마 우리 결혼할거야.
언니는 최초로 대낮에 도주를 감행하게 만든 남자와 결혼했고 그것이 언니의 첫 남편이었다. 둘은 잘 사는가 싶더니 언니의 바람기로 결혼 이 년 만에 갈라섰다. 언니 외도의 이유는 기가 막힌 것이었다. 남편이 마땅히 줘야할 양의 애정을 주지 않아 대신 다른 곳에서 채웠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때 엄마는 처음으로 언니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일 년 뒤 언니는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결혼 역시 오 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파경의 원인은 역시 언니였고, 변명 또한 기막히기가 첫 번째 못지않았다. 내가 줘야할 애정이 바닥났으니 미안한 마음에 헤어졌다는 것이 그녀의 이유였다. 그리고 번번이 그 책임은 엄마에게 돌아왔다.
- 왜 엄마는 나를 사랑해 주지 않은 거야,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사랑에 죽고 살잖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뒤, 혹은 부부싸움을 하고 술에 취해서 언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매번 같은 원망으로 울부짖었다. 언니의 전화가 올 때마다 엄마는 묵묵히 눈을 감고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1년 뒤 언니는 결국 지금의 남편과 세 번째 결혼을 함으로써, 부족한 애정을 채우며 살고 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건 언니의 세 번째 결혼식장에서의 엄마 표정이다. 엄마의 얼굴은 언니의 이혼 때처럼 심각하게 굳어 있었고 이번에는 그저 무탈하게 잘 살고 또 잘살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눈으로 언니를 바라봤다. 엄마의 이런 바람이 통했는지 어쨌는지 지금의 형부와는 꽤 오랜 시간 부부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언니는 그때의 얘기를 갑자기 꺼낸 내가 미웠는지 구시렁거리며 집에 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오빠는 옛날이야기가 탐탁지 않은지, 소주를 잔에 따라 쭉 들이켰다. 소주 반 병을 비웠을 즈음, 오빠가 입을 열었다.
- 어머니, 말이야…. 혹시 그 남자한테 가신 거 아니냐?
그 남자. 엄마의 남자. 이 얼마나 진부하고 케케묵은 옛 성인소설에나 나올법한 조합인가. 그러나 잊고 있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그리운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 당시 젊은 사람들이 자주 쓰던 올드 스파이스 (Old Spice)로션의 매운 향기였다. 후각으로 남는 기억이 사람의 뇌리 속에 가장 오래 기억된다고 한다. 선뜻 기억해내지 못하는 언니의 비해, 나는 이미 향기로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던 나에게 그래도 유일하게 부정(父情)이란 것을 알려준 사람이 구 선생이라는 사람이었다. 오빠가 엄마의 남자라 지칭하며 기억을 일깨웠던 바로 그 남자다. 오빠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그러니까 내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우리집의 형편은 조금 나아 있었다. 엄마가 화장품 외판원이나, 바느질, 남의 집 하루일을 해주며, 갓난애를 돌보는 등 끊임없이 일한 덕분에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오빠의 고등학교 진학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엄마는 악착같이 일해 열심히 저축까지 했었다.
아마도 그것은 오빠가 어렸을 적에 일으켰던 입양 사건에서 엄마가 받은 충격이 꽤나 컸다는 걸 짐작하게 했다. 고등학교 뒷바라지만은 남들 못지않게 해주겠다는 엄마만의 결심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무튼 이러한 엄마의 결단으로 오빠 역시 그 당시 고등학생들이 흔하게 하는 대학생 과외를 시작했다. 작은 대청마루에 상을 펴놓고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던 오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만난 사람이 바로 구 선생이었다.
사실 난 그분의 정확한 존함도 어느 학교 학생이셨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훗날 이모가 넋두리처럼 했던 이야기를 빌리자면 늦깎이 대학생이었다고 한다. 집안이 어느 지방에 꽤 유서 있는 집안이었던 구 선생은 뜻을 품은 다른 일이 있어 그 일을 하다가 집안 어른들의 강압으로 대학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집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스스로 돈을 모아 뜻을 펼치겠다는 생각으로 과외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이는 서른쯤 됐을까. 선이 굵직굵직한 얼굴에 면도를 말끔히 하고 다니는 깔끔한 남자였다. 유독 나를 예뻐했는데, 그건 아마도 이미 클 대로 커버린 언니나 오빠보다는 아직 철모르고 어린 내가 귀여웠을 것이다. 과외를 올 때마다 아이스크림이나 양과자 같은 먹을거리를 한 봉지씩 안겨주곤 했었다. 나는 구 선생을 꽤나 좋아했던 걸로 기억된다.
사실 구 선생과 엄마의 관계는 나로서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구 선생이 엄마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품었던 일이다. 그는 분명 엄마를 좋아했고, 어린 나는 철없게도 구 선생이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이 엄마에게 상처가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오빠가 과외를 시작한 지 삼 개월이 되었을 쯤, 모처럼만에 엄마가 쉬는 날이었다. 엄마는 가진 옷 중에서 제일 깨끗하고 고운 옷을 꺼내 입고, 내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섰다. 엄마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밝은 얼굴이었다. 항상 엄마가 생존과의 전쟁을 치르는 여전사 같이 느껴졌던 나는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여자다운 얼굴에 기분까지 좋아졌다.
엄마와 내가 향한 곳은 시내의 한 다방이었다. 생전 처음 와 본 시내구경에 말로만 듣던 다방에까지 들어간 나는 신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 엄마는 다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찾고 있는 듯 했다. 그때 한 여자가 다가왔다.
- 저, 구 선생 만나러 오셨죠?
말을 걸어 온 여자는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한복을 곱게 입고 말을 건네는 모습이나 꼿꼿한 태도가 우아하게 보였다. 구 선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엄마의 얼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여자는 엄마가 자리에 앉길 권유했고, 나를 흘깃 쳐다보았는데 그 눈이 어린 내가 보기에도 어찌나 쌀쌀했는지, 구경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들었었다. 자리에 앉은 여자는 예의바름을 가장한 강압적인 태도로 엄마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 저 구 선생 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그냥 앞은 생략하고 본론부터 얘기하지요. 제 자식이 나이만 꽉 차고 아직 여물지를 못한데다가 외지에 혼자 있다 보니 여러 가지로 폐를 끼친 것 같습니다. 송구스럽지만 제 자식이 더 이상 그 집에 공부를 가르치러 갈 수 없을 것 같네요.
엄마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을 벙긋하자, 여자가 급히 말을 가로막았다.
- 아, 무슨 얘기를 하시려는 건지 압니다. 그저, 똑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이시면 알 거 아닙니까. 하나뿐인 아들놈이 애 딸린 과부….
여자는 여기까지 얘기를 하다가 말을 멈추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그냥 그만두게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엄마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수긍의 의미로 희미한 미소를 얼굴에 띄울 뿐이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탁자 아래 하얗게 질리도록 주먹 쥔 엄마의 손이 보였다.
엄마가 그토록 손에 힘주어 쥐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우리 삼남매가 속을 썩일 때도, 사는 게 고달플 정도로 일이 힘들어도 엄마는 버릇처럼 손을 꽉 주먹 쥐곤 했다.
사실 엄마가 그 손안에 쥐고 싶었던 건 세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구선생과의 관계라고 해도 별건 없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내가 추측하기론 구 선생은 엄마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 계속 맴돌았지만 엄마는 사는 게 고달파 사랑 따위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자기 자식 살뜰히 예뻐해주는 구 선생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났을 것이고 그러던 차에 오빠 문제로 밖에서 만나기를 권유하여 나간 자리에서 오해하고 나온 구 선생의 어머니에게 그런 굴욕을 당했으니, 엄마의 속이 어땠을까 싶다.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성숙한 아이였더라면 하고 아쉬울 때가 있었다.
내가 옛 생각에 빠져 있을 동안 어느새 소주 한 병을 다 비운 오빠가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며 말을 내뱉었다.
- 엄마, 그놈한테 가신 거면 나 정말 요옹서 안 할거야~ 흑, 흐흑….
오빠가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평소에 술도 약한 오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슴이 북받치는지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오빠가 이층에서 자고 있을 자식들이 깰 정도로 서럽게 우는 것이었다. 오빠의 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도 덩달아 서러운지 울기 시작했다. 결국 한밤중에 쇼가 벌어졌다.
언니와 오빠는 부둥켜안고 울고 입으로 눈물이 들어가는지 콧물이 들어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분비물을 쏟아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 수준의 말을 뱉어내고 놀란 새언니는 아이들 깰까 이층으로 올라가고 오빠와 언니는 나까지 그 서러운 눈물의 현장에 합세해 주길 바라는지 연신 나에게 감정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울컥 짜증이 치민 나는 집에 가려고 일어섰는데 오빠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 으으흑…흑… 엄마가…엄마가 우리를 버렸어!
자신의 말이 뭐가 또 그리 서러운지 가슴까지 치며 우는 오빠와 언니의 한심한 작태가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현관을 박치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불도 켜지 않고 그대로 침대 속으로 돌진했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로 몸을 둥글게 말아 이불 속 공간을 최소화했다. 누군가가 이런 자세가 자궁 속 태아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이라 했던가. 나는 지금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가 나에게 만이라도 연락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오빠와 언니에게는 비밀로 하고 나만 알고 있을 텐데. 문득 나중에 더 시간이 흘러서 엄마가 정말로 보고 싶은데도 결코 다시 볼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코끝이 시큰해졌다.
언니와 오빠를 욕할 게 없다. 그런 나는 어떤가. 나이를 서른여섯이나 먹고 말투며 생각하는 건 아직 스물 한 두 살 같고 게을러서 마감도 여유 있게 해 본 적이 없고 시집도 안가고 혼자 살면서 속이나 썩히고 나는 뭘 얼마나 잘했다고 오빠와 언니를 욕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래도 밉다. 나는 아무리 속 썩여도 언니나 오빠 못 따라간다. 나이는 오빠와 언니가 나보다 더 먹었는데 주접은 두 사람이 제일 많이 떨었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정 떨어지는 짓들만 안했어도 엄마가 가출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화가 났다. 두 사람의 욕을 입속으로 나직이 구시렁거리다 피로가 몰려와 눈을 감았다.
나는 또 그 꿈을 꾸었다. 어린 나와, 오빠, 언니는 서럽게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고 엄마가 저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픽 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서 힘을 주어 섰다. 내 모습에 어린 오빠와 언니가 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조금씩 힘을 주어 한 발자국씩 걸음을 뗐다. 그리고 드디어 뛸 수 있을 정도로 두 다리에 힘이 생겼을 때 나는 가던 길을 되돌아와 어린 오빠와 언니의 머리에 알밤을 한 대 때려주었다. 머리를 감싸 쥐고 벙 쪄있는 오빠와 언니를 두고 나는 저기 멀리 가고 있는 엄마를 붙잡으러 있는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순식간에 잠이 확 달아나며 꿈에서 깼다. 땀을 흘리지도, 두려운 기분도 들지 않았다. 기분이 맑아지고 머릿속 모든 일이 순식간에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엄마 가출 삼일 째
다음 날 오빠가 출근하기 전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 오빠의 집으로 향했다. 언니는 전날 밤 울다 잠들어서 집에 가지 못한 듯 오빠네 식구와 함께 아침을 먹고 있었다.
- 엄마 찾지마.
아침부터 왠 헛소리를 하냐는 질책이 가득 담긴 눈으로 오빠와 언니는 나를 바라봤다.
- 엄마 찾지 말라고. 엄마 인생이야. 그냥 하고 싶은 거, 세상구경 실컷 하시라고 해.
선전포고 하듯 으름장을 놓는 내 모습에 언니와 오빠는 꿈속의 모습처럼 벙찐 듯 나를 바라보았다.
-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야, 엄마 노인이야. 이팔청춘 아니라고. 나이를 그렇게 먹고도 철없는 소리를 하네, 얘가.
언니의 핀잔이 이어졌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 엄마 돌아오면 언니 형부랑 부부싸움 한 거, 사람들이 언니 기분 나쁘게 한 거 또 다 엄마한테 찡찡거리고 들볶을 거잖아, 아니우? 그게 엄마를 얼마나 상처가 될지 생각해 봤어? 그리구 오빠는 체면 세워줄 사람 찾고 싶으면 사람을 고용하던가 아님 새언니한테나 해줘. 아니면 서로 해주면 되겠나. 오빠랑 언니 서로 협조해서 잘 해결하고, 엄마는 그냥 여행간 거라고 생각해. 언제 돌아오시는 지는 엄마가 정해. 신경 끄고 그냥 니들 할 일이나 하란 말이야!
언니와 오빠는 입맛이 쓴지 입술만 다시고는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말을 끝내자마자 집을 나섰다. 그리고 기분 좋게 차에 올라 국도로 차를 몰았다. 한참을 달려야 될 것 같지만 피곤할 것 같진 않다. 만족감이 머리를 감싼다. 나는 지금 가출한 엄마를 만나러 간다.
나는 어린 시절 종종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꿈속에서 나는 깨었을 때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마치 현실처럼 겪어야 했고,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울다가 깨어나곤 했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란 엄마가 떠나가는 일이었다. 엄마의 부재(不在)가 나에게는 가장 충격적이고 두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한 번이라도 우리 삼남매를 버렸거나, 혹은 그런 시도라도 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막연히 어린 아이들이 한 번쯤 하는, “우리 엄마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해“하는 울음 섞인 투정이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말로 칭얼댈 때 나는 꿈으로 칭얼댔을 뿐이라는 게 성인이 되고나서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여하튼 꿈의 내용은 이러했다. 어딘지 모를 낯선 장소에 나와 오빠, 언니가 있었다. 우리 삼남매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콧물이 입에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우리 남매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바쁜 걸음으로 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서럽게 울부짖어도 엄마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엄마를 붙잡을 마음에 일어나 뛰어보려 해도 어쩐 일인지 바닥에 주저앉은 두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미웠던 것은 엄마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두 다리가 아니라 오빠와 언니였다. 떠나가는 엄마를 붙잡을 생각은 안하고 울기만 하는 두 사람이 밉고 야속해 더 큰 소리로 울다가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악몽의 마지막 수순 이었다.
땀범벅이 된 얼굴로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엄마가 안방에서 잘 자고 있나 확인하는 일이었다. 안방 미닫이문을 살짝 열어 엄마가 있는 지를 본 뒤엔 방으로 돌아와 쌔근쌔근 잘 자고 있는 오빠와 언니의 볼을 힘껏 꼬집어 주고는 다시 잠을 청하고는 했다.
나는 이런 꿈을 일곱 살 무렵부터 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춘기가 올 때쯤 인가는 점점 그 횟수가 뜸해지는가 싶더니 스무 살 이후부터는 아예 꾸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나 자신이 느끼기에도 제법 어른이 됐다 싶을 때 어린 시절 악몽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겁을 냈던 꿈속의 일이 어른이 된 나에게는 더 이상 두렵거나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더 이상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가 된 것에 나는 씁쓸함을 느끼며 입맛을 다시곤 했던 일이다.
그런데 나는 어젯밤 십 육 년 만에 그 꿈을 다시 꾸었다. 꿈속의 나는 여전히 일곱 살의 어린 모습이었고 오빠와 언니 역시 내가 기억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내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꿈은 그때와 똑같은 공포로 나를 몰아넣었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카락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고, 눈에서 흘러내린 찝질한 소금기가 입가를 적셨다.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의 예감은 정말, 잘도 들어맞았다.
엄마 가출 첫 날
오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날 오후의 일이었다. 새벽에 꾼 꿈 때문에 잠을 설친데다가, 만화가라는 직업의 특징상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주로 하는 나에게 늦은 오후까지의 단잠은 그리 낯선 일도 아니었다. 시끄럽게 귓속을 울리는 휴대폰 진동음에 가까스로 잠을 깬 나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해영이냐, 오빠다
엄마를 모시고 사는 오빠의 전화였다. 어제 꾼 꿈이 찜찜했던 터라 그렇지 않아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볼 생각이었다.
- 응, 오빠. 엄마는?
- 그게 말이다, 해영아….
가슴이 철렁했다. 그 짧은 시간에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 엄마가 왜? 무슨 일 있어?
- 아니 그게 아니구…저기…
다급한 내 목소리에 오빠는 당황한 모양이었다.
- 저기, 혹시 어머니 너희 집에 가셨니? 하긴 네 목소리 들어보니 그건 아닌 거 같다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를 흘끗 보니 이제 막 여섯시가 지나 있었다.
- 난 또, 엄마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놀랬잖아. 아직 안 들어오셨어? 어디 인천이모네라도 가셨겠지 뭐.
- 응, 그냥 얘기도 없이 나가셨길래, 알았다. 집에 좀 들러라.
오빠와의 가슴 철렁한 전화를 끊고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샤워를 하고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저녁을 준비해 먹은 뒤 메일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오빠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 여보세…
- 해영아, 큰일이다. 어머니가 없어지셨어. 이모님 댁도 안 오셨다는데, 빨리 이쪽으로 좀 와야겠어, 얼른.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없어지셨다고?
오빠의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성북동에 살고 있는 오빠의 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열시를 반 정도 넘어서고 있었고, 일요일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해 차는 제법 빨리 달릴 수 있었다. 고급 주택가에 자리한 이층 양옥집으로 들어선 나는 현관 입구부터 습관대로 엄마를 부르기 시작했다.
- 엄마 없어지셨다니까.
엄마를 부르는 내 소리에 역시 전화를 받고 온 듯한 언니 미영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처럼 급하게 연락을 받고 왔을 텐데 언니는 깔끔한 모습이었다.
- 엄마가 없어지셨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 몰라. 새언니가 빨래 개켜둔 거 정리하려고 엄마 서랍 열었는데 텅텅 비어있더랜다, 글쎄. 엄마 묵주랑 성경책도 다 없어졌대. 인천 이모네도 안 오셨다는데 어딜 가셨겠니? 아니 도대체 집에만 있는 사람이 뭐 한거야. 노인네 나가시는 거 하나 보지도 못하고.
언니는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새언니가 엄마를 소홀히 대한 것에 대한 대단한 증거라도 잡은 사람처럼 굴었다. 새언니는 나를 맞으러 나왔다가 언니의 힐난에 죄인이라도 된 듯이 다시 부엌으로 사라졌다. 언니의 짧은 설명으로 상황을 파악해 보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안방 문을 열고 오빠가 점퍼 소매에 팔을 꿰차며 방을 나섰다.
- 어디가려구?
- 경찰서에 가봐야지. 실종 신고를 해야 될 거 아냐.
오빠는 사뭇 비장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오빠가 집을 나선 뒤 나는 새언니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는데 얘기는 대충 이러하다. 엄마가 새벽녘에 집을 나가셨는데 최근에 들어서 새벽기도를 다니셨기에 오늘도 그러신 줄 알았다, 새벽기도 후에 인천 사는 이모님 댁에 들러 점심도 먹고 놀다 오신 적이 있어서 그러신 줄 알고 일부러 전화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아홉시가 넘고 차 끊길 시간이 다되어도 돌아오시지 않아 전화해보니 이모님 댁은 가시지 않았고, 마침 빨래 정리를 하다 보니 엄마 서랍이 비어있어서 집을 나가신 걸 알게 되었다, 라는 것이 이야기의 전모다. 새언니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언니는 다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아니, 그래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게 노인들 몸이고, 머리인데 무슨 정신으로 나가신 줄 알고 연락도 안 해봐. 그러다 무슨 일 생기실지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드나, 내참.
언니의 말에 원체 마음이 약한 새언니는 송구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언니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다. 언니 말대로 엄마 나이가 오늘하고 내일 다른 나이라지만 아직까지 정신을 놓으시거나 어디 가서 일 당하시기엔 머리가 맑고 정정하신 분이었다.
게다가 젊었을 적부터 꼼꼼하고 조심성 많으셨던 분 아닌가. 그런 쪽으로는 생각이 가지 않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옷가지와 성경책 묵주가 없어진 것도 이상했다. 나의 생각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우치고 있을 즈음 오빠가 돌아왔다. 열이 벌겋게 올라 화가 난 듯한 얼굴이었다.
- 실종신고는 했어? 경찰이 뭐래?
- 후….
- 왜 그래? 뭐가 어떻게 된 건데 그래?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오빠는 간신히 분을 삭이는 듯 말을 이었다. 꽤나 분했는지 숨소리가 거친 것이 점잖은 평소 오빠의 모습은 아니었다.
- 아니, 그 망할 경찰들이 어머니가 없어졌다니까 한다는 소리가 실종이 아니라는 거야. 노인 가출은 경찰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대. 가출이라니 그게 말이 되냐. 우리 어머니가 뭐가 아쉬워서 가출을 하겠냐고. 가출 절대 아니고 실종이라니까, 실종 당할 줄 알고 옷가지 챙겨서 나갔을 리가 없지 않겠냐고 묻더라. 참내 기가 막혀서. 아니 우리 어머니가 뭐가 부족해서 자식, 손자 다 버리고 집을 나가시겠냐, 안 그러냐 미영아?
- 어머, 어머. 그 썩을 놈의 경찰들 진짜 개소리하고 있네. 우리 엄마가 가출을 왜해. 뭣도 모르면서 사람 속만 뒤집네. 됐어. 사립 탐정을 고용하던지 다른 공공기간에 의뢰하던지 엄마 꼭 찾을 수 있어.
언니 미영의 맞장구에 오빠의 화는 더욱 거세져 결국 얌전하던 오빠의 입에서 씨팔 망할놈의 경찰새끼들이라는 말까지 듣고서야 나는 오빠의 집을 나섰다. 사실 나도 경찰들처럼 엄마의 실종보다는 가출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그러나 언니와 오빠는 엄마는 절대 가출할 이유가 없다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나는 알 것도 같았다. 엄마가 가출한 이유를.
엄마 가출 이틀째
다음날 오후, 나는 오빠의 집으로 향했다. 마감도 이미 넘긴 상태라 일에 쫒기지 않을 수 있었다. 설령 일이 있었다 해도 손에 잡힐 리는 없겠지만.
어젯밤 잠들기 전 최종적으로 엄마의 가출로 마음을 정한 나는, 차라리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엄마 스스로의 의지로 나가셨다는 점에서 다소 안심이 되었으나, 통장이나 돈 될 만한 물건을 들고 나가시지 않았다는 점은 크게 염려가 되었다.
오빠의 집에 도착하자 집에는 새언니 혼자 있었다. 오빠와 언니는 사립 탐정을 알아보겠다고 집을 나섰다 하고,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간 상태였다. 체면구기는 일을 질색하는 오빠답게 자식들에게 행여나 자신의 어머니가 책잡힐세라 할머니는 기도원에 잠시 들어가셨다고 했단다. 참 오빠다운 행동이었다.
커피를 끓인다는 새언니를 뒤로하곤 혼자 엄마의 방을 들어가 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만 정작 있어야 할 사람은 떠나버린, 주인 잃은 엄마의 방…. 방도 참 엄마다웠다. 환갑을 한참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당신 방 청소는 스스로 하실 정도로 유난히 깔끔하신 분이었다. 장식장 위에 있어야 할아버지의 사진이 없는 걸 보니 아마 가지고 나가신 듯 했다.
살아있을 때 한 번도 보지 못한 나의 아버지는 엄마를 만나 그 시절 흔하게 들려오는 사랑이야기처럼 결혼식도 못 올리고 오직 사랑만으로 초라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절 모든 가난한 남성의 대부분이 이루지도 못하고 미수에 그칠 대단한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았듯 아버지도 예외 없이 포부만은 대단한 것이어서 엄마는 아버지를 퍽 믿었더랜다.
그러나 실상 아버지는 그런 큰 포부를 담기엔 워낙 그릇이 작은 사내라서 결국 포부고 뭐고 잘 먹지도 못해 원체 비실한 체력에 그만 폐병에 걸려 돌아가시게 된다. 그땐 이미 8살이 된 오빠와 6살이 된 언니, 그리고 뱃속에 자라고 있던 나까지 모두 삼남매를 세상에 남기신 후였다.
이것은 훗날 이모에게서 들은 얘기이지만, 아버지의 죽음 후 죽을힘을 다해 온갖 고생을 이겨온 엄마를 본 이모로서는 어느 정도 아빠에 대한 편견이 들어간 이야기일 것이다. 기껏해야 8-9년이나 살았을까. 자식도 두고 떠나는 엄마는 남편은 데려갈 마음이 어디서 생겼을지, 혼자 가출하려니 조금은 쓸쓸했나 싶어 가슴 한쪽이 싸해지는 기분이다.
조심스레 장롱을 열어보니 옷 이외에 별다른 소지품은 없는 듯했다. 다만 옷장 한 구석에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듯한 옷 두 세 벌이 케이스가 씌워진 채 걸려 있었다. 검소한 엄마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고가의 옷이었는데 아마도 오빠가 갖다 놓은 듯 했다. 갑자기 속에서 부아가 치밀면서 오빠에게 화가 났다.
오빠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점잖고 덕 많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항상 그 노력을 위해 희생해야 되는 건 주변 사람들이었다. 아마 이 옷들도 분명 오빠가 듣기 좋은 소리로 엄마를 설득해서 억지로 떠안긴 옷일 것이다. 그리고 이 옷들의 목적은 부모에게 좋은 옷도 척척 사 입히는 능력 있고 효성스러운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오빠는 어릴 적부터 머리가 참 영리했다.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하는 진부한 표현이 오빠를 위해 생긴 것처럼 그 말 많고 더러운 동네에서 참 빛이 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사방에서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가난에 맞서 싸워야 했다. 여자 혼자 힘으로 세 남매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오빠는 머리가 커갈수록 영특해졌고, 영특한 아이답게 너무 빨리 자신이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어서는 이 동네를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이 스스로 돌파구를 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빠는 동네를 벗어나 시내로 나갔다. 지금에 이르러서 생각해보면 왜 꼭 지독히도 가난한 곳 가까이에는 지독히도 부유한 사람들이 살았던 건지. 오빠는 시내를 통틀어 가장 잘 살던 모신문사 사장이란 사람의 집을 찾아갔다. 그곳 가정부에게 몇날 며칠을 울고불고 떼를 쓰니, 이를 본 사장이 오빠를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오빠는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을 입양해 달라고 말했고, 그날 돌아온 것은 어머니의 회초리와 봉투에 든 얼마간의 돈이었다.
엄마는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항상 돌아오는 것은 화난 음성이나 험한 말이 아닌 회초리와, 세상이 무너진 듯한 엄마의 얼굴이었다. 우리 삼남매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후부터 오빠는 자신을 믿기로 했는지 어쨌는지 미친 듯이 공부했다. 원체 머리도 좋았고 본인이 노력도 하는 만큼 오빠는 굉장한 우등생으로 성장했다.
한 가지 변한 점이 있다면 오빠는 그 뒤로 남들의 시선을 이상하리만치 의식했다. 제법 남자 티가 난다싶은 사춘기 무렵부터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엄마를 어머니라 높여 부르고, 학교에선 모범생 가정에선 착실한 맏아들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아니 그렇게 보이기 위해 작고 소소한 일부터 큰일까지, 모두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위해 사는 사람 같았다.
방바닥에 내동댕이친 옷들 말고도 안쪽 장롱에 이런 옷들이 즐비한 것을 알고 있다. 아마 매장 직원에게 우리 어머니 갖다드릴 거라고 하며 사와서는 입으시지도 않을 것을 아니 입으시지 못할 것을 알면서 장롱에 억지로 넣었겠지, 혹은 원하지도 않는 엄마를 억지로 데려가 매장에서 인형처럼 이것저것 입혀보고, 사람들의 존경어린 시선을 받으며 늙으신 노모를 모시는 효성 지극한 아들로 자신을 포장하고 한껏 기뻐했겠지, 머릿속에 안 봐도 뻔한 그림들이 스쳐갔다.
엄마가 가출한 것에 대해 오빠의 잘못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가출을 결심하기 전 엄마가 느꼈을 기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무척 힘이 든다는 것이다.
옷을 제자리에 걸어두고 새언니와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오빠와 언니가 돌아왔다. 일이 잘 풀렸는지 어쨌는지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았다.
- 어떻게 됐어?
- 응, 잘된 거 같아, 얘. 차라리 경찰에 안 맡긴 게 더 나은 것 같아. 지금 그쪽으로 꽤 유명한 사립탐정 찾아서 고용했어. 한 일주일내로 엄마 찾을테구 그럼 모시고 오면 되지.
언니는 신이 난 듯이 말했다. 오빠 역시 어제와는 사뭇 다른 밝은 표정이었다. 말은 쉬웠다 찾아서 모시고 오면 된다니. 늦은 저녁 겸 간소한 상이 차려졌고, 우리 삼남매가 둘러앉았다. 이렇게 둘러앉기도 참 간만의 일이었다. 어릴 적에도 이렇게 작은 상에 셋이 옹기종기 붙어 앉아서 엄마가 차려놓고 간 밥을 참 맛있게도 먹었었다.
- 오빠, 우리 어릴 때 생각난다. 그때도 이런 작은 상이었는데.
- 얘, 그때 뭐 생각할 거라고 있겠니. 상만 작았니? 밥도 쪼끔, 반찬 가짓수도 쪼끔. 아우, 난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배가 고파.
언니는 그때의 기억이라곤 배고픈 일밖에 없었나 보다. 하긴, 그만한 나이에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라는 게 뭐가 있을 수 있을까. 춥고 배고프고 졸린 기억들, 몸이 힘들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언니에게 일깨워 주고 싶은 과거가 있다. 나는 툭 쏘듯 내뱉었다.
- 왜 배고픈 일밖에 없어. 언니 야반도주한 얘기도 있잖아
언니의 부산했던 젓가락질이 멈춘다.
- 야, 이 기집애야. 이십년도 더 지난 얘기를 왜 하는 거야 갑자기.
- 이십년도 더 지났으니까 하는 거 아니우.
- 난 다 잊었어.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아니다. 언니가 잊었을 리가 없었다. 그때의 그 질주가 쭉 이어져 지금의 언니 인생에도 고스란히 연결되어 있는데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언니는 끊임없이 애정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생계에 바쁜 엄마가 자식에게 줘야할 적정량의 애정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증상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나와 오빠는 그런 애정결핍적 증상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릴 적의 언니는 부족한 애정을 동네 어른들에게서 채웠다. 예쁘고 야무진 아이로 이집 저집에서 애정을 얻었다. 나이가 더 들어서는 또래의 남자들에게서 부족한 애정을 보충받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언니가 평생 남자들과의 애증관계를 지속하며 살아온 것은.
제법 애들답지 않은 연애를 하던 언니는 열여덟 살 때 남자와 야반도주를 했다. 밤중에 그 깜깜한 골목을 뛰어 내려갈 때 아마도 언니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평생 애정에 굶주리며 살지 않아도 될 거라고 말이다. 언니는 한 달 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두 달 뒤 다른 남자와 야반도주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삼 개월 만에 돌아왔다.
정신을 좀 차렸는가 싶을 정도로 반년을 잠잠히 보낸 언니는 다시 남자와 떠났다. 이번에는 야반도주도 아니었다. 훤한 대낮에 남자의 팔짱을 끼고 걸어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것은 일 년 뒤의 일이었다. 언니는 엄마에게 돌아와 자랑스레 말했다.
- 엄마 우리 결혼할거야.
언니는 최초로 대낮에 도주를 감행하게 만든 남자와 결혼했고 그것이 언니의 첫 남편이었다. 둘은 잘 사는가 싶더니 언니의 바람기로 결혼 이 년 만에 갈라섰다. 언니 외도의 이유는 기가 막힌 것이었다. 남편이 마땅히 줘야할 양의 애정을 주지 않아 대신 다른 곳에서 채웠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때 엄마는 처음으로 언니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일 년 뒤 언니는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결혼 역시 오 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파경의 원인은 역시 언니였고, 변명 또한 기막히기가 첫 번째 못지않았다. 내가 줘야할 애정이 바닥났으니 미안한 마음에 헤어졌다는 것이 그녀의 이유였다. 그리고 번번이 그 책임은 엄마에게 돌아왔다.
- 왜 엄마는 나를 사랑해 주지 않은 거야,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사랑에 죽고 살잖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뒤, 혹은 부부싸움을 하고 술에 취해서 언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매번 같은 원망으로 울부짖었다. 언니의 전화가 올 때마다 엄마는 묵묵히 눈을 감고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1년 뒤 언니는 결국 지금의 남편과 세 번째 결혼을 함으로써, 부족한 애정을 채우며 살고 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건 언니의 세 번째 결혼식장에서의 엄마 표정이다. 엄마의 얼굴은 언니의 이혼 때처럼 심각하게 굳어 있었고 이번에는 그저 무탈하게 잘 살고 또 잘살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눈으로 언니를 바라봤다. 엄마의 이런 바람이 통했는지 어쨌는지 지금의 형부와는 꽤 오랜 시간 부부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언니는 그때의 얘기를 갑자기 꺼낸 내가 미웠는지 구시렁거리며 집에 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오빠는 옛날이야기가 탐탁지 않은지, 소주를 잔에 따라 쭉 들이켰다. 소주 반 병을 비웠을 즈음, 오빠가 입을 열었다.
- 어머니, 말이야…. 혹시 그 남자한테 가신 거 아니냐?
그 남자. 엄마의 남자. 이 얼마나 진부하고 케케묵은 옛 성인소설에나 나올법한 조합인가. 그러나 잊고 있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그리운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 당시 젊은 사람들이 자주 쓰던 올드 스파이스 (Old Spice)로션의 매운 향기였다. 후각으로 남는 기억이 사람의 뇌리 속에 가장 오래 기억된다고 한다. 선뜻 기억해내지 못하는 언니의 비해, 나는 이미 향기로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던 나에게 그래도 유일하게 부정(父情)이란 것을 알려준 사람이 구 선생이라는 사람이었다. 오빠가 엄마의 남자라 지칭하며 기억을 일깨웠던 바로 그 남자다. 오빠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그러니까 내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우리집의 형편은 조금 나아 있었다. 엄마가 화장품 외판원이나, 바느질, 남의 집 하루일을 해주며, 갓난애를 돌보는 등 끊임없이 일한 덕분에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오빠의 고등학교 진학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엄마는 악착같이 일해 열심히 저축까지 했었다.
아마도 그것은 오빠가 어렸을 적에 일으켰던 입양 사건에서 엄마가 받은 충격이 꽤나 컸다는 걸 짐작하게 했다. 고등학교 뒷바라지만은 남들 못지않게 해주겠다는 엄마만의 결심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무튼 이러한 엄마의 결단으로 오빠 역시 그 당시 고등학생들이 흔하게 하는 대학생 과외를 시작했다. 작은 대청마루에 상을 펴놓고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던 오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만난 사람이 바로 구 선생이었다.
사실 난 그분의 정확한 존함도 어느 학교 학생이셨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훗날 이모가 넋두리처럼 했던 이야기를 빌리자면 늦깎이 대학생이었다고 한다. 집안이 어느 지방에 꽤 유서 있는 집안이었던 구 선생은 뜻을 품은 다른 일이 있어 그 일을 하다가 집안 어른들의 강압으로 대학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집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스스로 돈을 모아 뜻을 펼치겠다는 생각으로 과외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이는 서른쯤 됐을까. 선이 굵직굵직한 얼굴에 면도를 말끔히 하고 다니는 깔끔한 남자였다. 유독 나를 예뻐했는데, 그건 아마도 이미 클 대로 커버린 언니나 오빠보다는 아직 철모르고 어린 내가 귀여웠을 것이다. 과외를 올 때마다 아이스크림이나 양과자 같은 먹을거리를 한 봉지씩 안겨주곤 했었다. 나는 구 선생을 꽤나 좋아했던 걸로 기억된다.
사실 구 선생과 엄마의 관계는 나로서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구 선생이 엄마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품었던 일이다. 그는 분명 엄마를 좋아했고, 어린 나는 철없게도 구 선생이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이 엄마에게 상처가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오빠가 과외를 시작한 지 삼 개월이 되었을 쯤, 모처럼만에 엄마가 쉬는 날이었다. 엄마는 가진 옷 중에서 제일 깨끗하고 고운 옷을 꺼내 입고, 내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섰다. 엄마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밝은 얼굴이었다. 항상 엄마가 생존과의 전쟁을 치르는 여전사 같이 느껴졌던 나는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여자다운 얼굴에 기분까지 좋아졌다.
엄마와 내가 향한 곳은 시내의 한 다방이었다. 생전 처음 와 본 시내구경에 말로만 듣던 다방에까지 들어간 나는 신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 엄마는 다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찾고 있는 듯 했다. 그때 한 여자가 다가왔다.
- 저, 구 선생 만나러 오셨죠?
말을 걸어 온 여자는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한복을 곱게 입고 말을 건네는 모습이나 꼿꼿한 태도가 우아하게 보였다. 구 선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엄마의 얼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여자는 엄마가 자리에 앉길 권유했고, 나를 흘깃 쳐다보았는데 그 눈이 어린 내가 보기에도 어찌나 쌀쌀했는지, 구경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들었었다. 자리에 앉은 여자는 예의바름을 가장한 강압적인 태도로 엄마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 저 구 선생 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그냥 앞은 생략하고 본론부터 얘기하지요. 제 자식이 나이만 꽉 차고 아직 여물지를 못한데다가 외지에 혼자 있다 보니 여러 가지로 폐를 끼친 것 같습니다. 송구스럽지만 제 자식이 더 이상 그 집에 공부를 가르치러 갈 수 없을 것 같네요.
엄마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을 벙긋하자, 여자가 급히 말을 가로막았다.
- 아, 무슨 얘기를 하시려는 건지 압니다. 그저, 똑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이시면 알 거 아닙니까. 하나뿐인 아들놈이 애 딸린 과부….
여자는 여기까지 얘기를 하다가 말을 멈추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그냥 그만두게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엄마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수긍의 의미로 희미한 미소를 얼굴에 띄울 뿐이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탁자 아래 하얗게 질리도록 주먹 쥔 엄마의 손이 보였다.
엄마가 그토록 손에 힘주어 쥐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우리 삼남매가 속을 썩일 때도, 사는 게 고달플 정도로 일이 힘들어도 엄마는 버릇처럼 손을 꽉 주먹 쥐곤 했다.
사실 엄마가 그 손안에 쥐고 싶었던 건 세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구선생과의 관계라고 해도 별건 없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내가 추측하기론 구 선생은 엄마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 계속 맴돌았지만 엄마는 사는 게 고달파 사랑 따위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자기 자식 살뜰히 예뻐해주는 구 선생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났을 것이고 그러던 차에 오빠 문제로 밖에서 만나기를 권유하여 나간 자리에서 오해하고 나온 구 선생의 어머니에게 그런 굴욕을 당했으니, 엄마의 속이 어땠을까 싶다.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성숙한 아이였더라면 하고 아쉬울 때가 있었다.
내가 옛 생각에 빠져 있을 동안 어느새 소주 한 병을 다 비운 오빠가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며 말을 내뱉었다.
- 엄마, 그놈한테 가신 거면 나 정말 요옹서 안 할거야~ 흑, 흐흑….
오빠가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평소에 술도 약한 오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슴이 북받치는지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오빠가 이층에서 자고 있을 자식들이 깰 정도로 서럽게 우는 것이었다. 오빠의 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도 덩달아 서러운지 울기 시작했다. 결국 한밤중에 쇼가 벌어졌다.
언니와 오빠는 부둥켜안고 울고 입으로 눈물이 들어가는지 콧물이 들어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분비물을 쏟아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 수준의 말을 뱉어내고 놀란 새언니는 아이들 깰까 이층으로 올라가고 오빠와 언니는 나까지 그 서러운 눈물의 현장에 합세해 주길 바라는지 연신 나에게 감정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울컥 짜증이 치민 나는 집에 가려고 일어섰는데 오빠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 으으흑…흑… 엄마가…엄마가 우리를 버렸어!
자신의 말이 뭐가 또 그리 서러운지 가슴까지 치며 우는 오빠와 언니의 한심한 작태가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현관을 박치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불도 켜지 않고 그대로 침대 속으로 돌진했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로 몸을 둥글게 말아 이불 속 공간을 최소화했다. 누군가가 이런 자세가 자궁 속 태아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이라 했던가. 나는 지금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가 나에게 만이라도 연락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오빠와 언니에게는 비밀로 하고 나만 알고 있을 텐데. 문득 나중에 더 시간이 흘러서 엄마가 정말로 보고 싶은데도 결코 다시 볼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코끝이 시큰해졌다.
언니와 오빠를 욕할 게 없다. 그런 나는 어떤가. 나이를 서른여섯이나 먹고 말투며 생각하는 건 아직 스물 한 두 살 같고 게을러서 마감도 여유 있게 해 본 적이 없고 시집도 안가고 혼자 살면서 속이나 썩히고 나는 뭘 얼마나 잘했다고 오빠와 언니를 욕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래도 밉다. 나는 아무리 속 썩여도 언니나 오빠 못 따라간다. 나이는 오빠와 언니가 나보다 더 먹었는데 주접은 두 사람이 제일 많이 떨었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정 떨어지는 짓들만 안했어도 엄마가 가출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화가 났다. 두 사람의 욕을 입속으로 나직이 구시렁거리다 피로가 몰려와 눈을 감았다.
나는 또 그 꿈을 꾸었다. 어린 나와, 오빠, 언니는 서럽게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고 엄마가 저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픽 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서 힘을 주어 섰다. 내 모습에 어린 오빠와 언니가 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조금씩 힘을 주어 한 발자국씩 걸음을 뗐다. 그리고 드디어 뛸 수 있을 정도로 두 다리에 힘이 생겼을 때 나는 가던 길을 되돌아와 어린 오빠와 언니의 머리에 알밤을 한 대 때려주었다. 머리를 감싸 쥐고 벙 쪄있는 오빠와 언니를 두고 나는 저기 멀리 가고 있는 엄마를 붙잡으러 있는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순식간에 잠이 확 달아나며 꿈에서 깼다. 땀을 흘리지도, 두려운 기분도 들지 않았다. 기분이 맑아지고 머릿속 모든 일이 순식간에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엄마 가출 삼일 째
다음 날 오빠가 출근하기 전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 오빠의 집으로 향했다. 언니는 전날 밤 울다 잠들어서 집에 가지 못한 듯 오빠네 식구와 함께 아침을 먹고 있었다.
- 엄마 찾지마.
아침부터 왠 헛소리를 하냐는 질책이 가득 담긴 눈으로 오빠와 언니는 나를 바라봤다.
- 엄마 찾지 말라고. 엄마 인생이야. 그냥 하고 싶은 거, 세상구경 실컷 하시라고 해.
선전포고 하듯 으름장을 놓는 내 모습에 언니와 오빠는 꿈속의 모습처럼 벙찐 듯 나를 바라보았다.
-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야, 엄마 노인이야. 이팔청춘 아니라고. 나이를 그렇게 먹고도 철없는 소리를 하네, 얘가.
언니의 핀잔이 이어졌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 엄마 돌아오면 언니 형부랑 부부싸움 한 거, 사람들이 언니 기분 나쁘게 한 거 또 다 엄마한테 찡찡거리고 들볶을 거잖아, 아니우? 그게 엄마를 얼마나 상처가 될지 생각해 봤어? 그리구 오빠는 체면 세워줄 사람 찾고 싶으면 사람을 고용하던가 아님 새언니한테나 해줘. 아니면 서로 해주면 되겠나. 오빠랑 언니 서로 협조해서 잘 해결하고, 엄마는 그냥 여행간 거라고 생각해. 언제 돌아오시는 지는 엄마가 정해. 신경 끄고 그냥 니들 할 일이나 하란 말이야!
언니와 오빠는 입맛이 쓴지 입술만 다시고는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말을 끝내자마자 집을 나섰다. 그리고 기분 좋게 차에 올라 국도로 차를 몰았다. 한참을 달려야 될 것 같지만 피곤할 것 같진 않다. 만족감이 머리를 감싼다. 나는 지금 가출한 엄마를 만나러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