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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간호문학상 수필 가작
안녕! 테네시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0-12-23 오후 15:51:08
- 김 송 (강동경희대병원 국제진료소)
오늘 아침에는 맨발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제 다시 가을이 오는 건가.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그래도 올해는 94년에 태어난 나의 무거운 차를 끌고 낙산에 다녀오는 것으로 부모 숙제를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아스팔트 위로 훅훅 내뿜던 열기마저도 오고가는지 조차 모르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절기 앞에서는 꼼짝을 못 하는가 봅니다. 입추가 벌써 지났으니까. 그래, 가을이 오는 것이겠지요.
어린 시절 노랗게 흩날리던 은행잎이 좋아서 가을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불혹인지 미혹인지 모를 세월을 벌써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가을은 오래 묵은 친구처럼 좋기만 합니다. 아직도 미욱함이 많아서 오랜 친구같은 가을에는 잠깐씩 주책을 부리기도 하지요.
맘 좋은 친구들과 한 잔 술도 마시고 코에 바람도 넣어 주면서. 그리고 또 가을이 오면 난 언제나 이십대 후반에 잠깐 머물렀던 그 거대한 나라를 생각합니다. 미국·테네시·낙스빌. 그리고 그 곳에 남겨두고 온 나의 순수하고 정열 가득했던 젊은 날을 그리워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서 모든 수속을 하느라 광화문 근처의 대사관으로 학교로 여행사로 달뜬 여름을 보내고 난 후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젊은 나는 벅차오르던 가슴을 주체하지도 못했습니다. 공항 대합실 창문 너머로 줄지어 선 고래 같은 비행기들을 보면서 나의 앞으로의 인생은 공항문에서 시작하고 공항문에서 끝내리라 다짐했었지요. 김포공항(당시에는 김포공항임)의 상공에서 보았던 흐트러지고 찌그러진 성냥갑 같았던 우리나라의 모습을 뒤로하고 디트로이트 상공에서 본 그 나라는 참으로 정돈되고 넓기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벅찬 감동으로 다가갔던 그 나라 그 캠퍼스에서 저는 인어의 은빛 비늘 같은 바퀴를 달고 캠퍼스를 누비던 그를 만났습니다. 운전석과 조수석이 일자로 연결된 그의 낡은 차 앞좌석에서 흘러나오던 김광석의 음악,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의 높은 코와 반듯한 이마, 펜싱복을 입은 그의 단단하고 정돈된 어깨, 아침 일찍 학교 앞 맥도날드에서 먹곤 했던 브랙패스트, 그와 함께 자주 나갔던 스모키 마운틴의 넓은 벌판들, 스모키 마운틴의 언덕에 피었던 노란 수선화를 꺾다가 경찰에게 걸려서 경고를 받은 일, 아무것도 넣지 않은 검은 커피의 맛, 강가의 야영장. 그리고 그 모든 것들, 그 모든 시간들.
그렇게 불쑥 내 인생에 찾아왔던 그래서 전부가 되었던 그 시절 그 시간들은 또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그의 은빛 비늘 같은 다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너무 어리기만 했던 아이들은 그해 내리던 첫눈을 맞으며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마치 준비된 듯한 그의 영정 사진 앞에서 나는 그저 그의 이름을 피를 토하듯 부르기만 했었습니다. 딸아이가 아빠 신발이라고 버려진 운동화 한 짝을 들고 왔을 때도 나는 그 운동화를 부여안고 그저 그의 이름만 불렀습니다.
세상은 참 신기합니다. 죽을 것 같던 시간들은 지나고 나는 이렇게 계절을 보내고 계절을 맞으며 가슴을 달래며 일도 하고 있으니까요. 그를 보내고 살던 곳을 정리하고 늦은 나이에 간호사가 되어서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인생은 이제껏 제가 살아왔던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냉정했으며 또한 따뜻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속의 그는 점점 젊어지고 아이들은 점점 자라 이제 내년이면 둘 다 중학생이 되겠지요.
삶의 깊이와 넓이는 나와 같은 사람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거라서 그저 오늘을 살고 또 살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서 그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만 하지요. 그때까지 그냥 이렇게 살려고 합니다. 기쁜 대로 슬픈 대로 외로운 대로. 또 몇 번의 가을을 만나고 그를 그리고 그 속에서 젊은 나를 만나면서요. 그때도 그 사람은 인어의 은빛 비늘 같은 다리를 하고 있을까요?
오늘 아침에는 맨발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제 다시 가을이 오는 건가.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그래도 올해는 94년에 태어난 나의 무거운 차를 끌고 낙산에 다녀오는 것으로 부모 숙제를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아스팔트 위로 훅훅 내뿜던 열기마저도 오고가는지 조차 모르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절기 앞에서는 꼼짝을 못 하는가 봅니다. 입추가 벌써 지났으니까. 그래, 가을이 오는 것이겠지요.
어린 시절 노랗게 흩날리던 은행잎이 좋아서 가을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불혹인지 미혹인지 모를 세월을 벌써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가을은 오래 묵은 친구처럼 좋기만 합니다. 아직도 미욱함이 많아서 오랜 친구같은 가을에는 잠깐씩 주책을 부리기도 하지요.
맘 좋은 친구들과 한 잔 술도 마시고 코에 바람도 넣어 주면서. 그리고 또 가을이 오면 난 언제나 이십대 후반에 잠깐 머물렀던 그 거대한 나라를 생각합니다. 미국·테네시·낙스빌. 그리고 그 곳에 남겨두고 온 나의 순수하고 정열 가득했던 젊은 날을 그리워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서 모든 수속을 하느라 광화문 근처의 대사관으로 학교로 여행사로 달뜬 여름을 보내고 난 후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젊은 나는 벅차오르던 가슴을 주체하지도 못했습니다. 공항 대합실 창문 너머로 줄지어 선 고래 같은 비행기들을 보면서 나의 앞으로의 인생은 공항문에서 시작하고 공항문에서 끝내리라 다짐했었지요. 김포공항(당시에는 김포공항임)의 상공에서 보았던 흐트러지고 찌그러진 성냥갑 같았던 우리나라의 모습을 뒤로하고 디트로이트 상공에서 본 그 나라는 참으로 정돈되고 넓기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벅찬 감동으로 다가갔던 그 나라 그 캠퍼스에서 저는 인어의 은빛 비늘 같은 바퀴를 달고 캠퍼스를 누비던 그를 만났습니다. 운전석과 조수석이 일자로 연결된 그의 낡은 차 앞좌석에서 흘러나오던 김광석의 음악,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의 높은 코와 반듯한 이마, 펜싱복을 입은 그의 단단하고 정돈된 어깨, 아침 일찍 학교 앞 맥도날드에서 먹곤 했던 브랙패스트, 그와 함께 자주 나갔던 스모키 마운틴의 넓은 벌판들, 스모키 마운틴의 언덕에 피었던 노란 수선화를 꺾다가 경찰에게 걸려서 경고를 받은 일, 아무것도 넣지 않은 검은 커피의 맛, 강가의 야영장. 그리고 그 모든 것들, 그 모든 시간들.
그렇게 불쑥 내 인생에 찾아왔던 그래서 전부가 되었던 그 시절 그 시간들은 또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그의 은빛 비늘 같은 다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너무 어리기만 했던 아이들은 그해 내리던 첫눈을 맞으며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마치 준비된 듯한 그의 영정 사진 앞에서 나는 그저 그의 이름을 피를 토하듯 부르기만 했었습니다. 딸아이가 아빠 신발이라고 버려진 운동화 한 짝을 들고 왔을 때도 나는 그 운동화를 부여안고 그저 그의 이름만 불렀습니다.
세상은 참 신기합니다. 죽을 것 같던 시간들은 지나고 나는 이렇게 계절을 보내고 계절을 맞으며 가슴을 달래며 일도 하고 있으니까요. 그를 보내고 살던 곳을 정리하고 늦은 나이에 간호사가 되어서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인생은 이제껏 제가 살아왔던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냉정했으며 또한 따뜻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속의 그는 점점 젊어지고 아이들은 점점 자라 이제 내년이면 둘 다 중학생이 되겠지요.
삶의 깊이와 넓이는 나와 같은 사람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거라서 그저 오늘을 살고 또 살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서 그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만 하지요. 그때까지 그냥 이렇게 살려고 합니다. 기쁜 대로 슬픈 대로 외로운 대로. 또 몇 번의 가을을 만나고 그를 그리고 그 속에서 젊은 나를 만나면서요. 그때도 그 사람은 인어의 은빛 비늘 같은 다리를 하고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