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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간호문학상 수기가작
아빠 안녕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09-12-28 오후 17:41:25
-조문애(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올해 몇 살이지”
“네, 서른이요”
“서른이면…….우리 둘째가 서른셋이니깐…….내 막내딸 하면 되겠네…….” “막내딸 할래?”
“막내딸이요? 저 이제 아빠 생긴 거예요?”
그렇게 난 아빠가 생겼다.
아빠(조 00님)를 처음 본건 어느 때와 같이 출근을 해서였다. 이브닝 출근을 해서 병실 라운딩을 돌고 있는데 처음 본 환자가 침대에 앉아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힘드신 것 같은데 누워 계세요”
“난 5개월 동안 누워본적이 없어요”
2009년 1월에 담도암 말기와 함께 폐전이를 진단받고 서울에서 항암치료를 몇차례했었으나 효과가 없었고 이후 급속한 병의 진행으로 오늘 아침에 우리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을 했다고 했다.
폐전이로 인해 누워서는 지낼 수가 없었고 낮이나 밤이나 침대에 앉아서 생활을 했었다고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환자마다 ‘희망나무’라는 것을 만든다. 나뭇가지를 화분에 심고, 부직포로 꽃과 잎을 만들어서 붙인 후 그곳에 환자 자신이 희망하는것,가족들이 희망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써서 희망나무에 걸어 침상 옆에 놓는다. 희망이 이루어 질수 있도록…….
난 그 다음날 출근을 해서 환자와 보호자(부인)과 함께 희망나무를 만들었다.
“난 못하겠어.하고싶지 않아”
“여보!.같이해요. 같이 만 들어봐요”
희망나무를 만들것이라는것을 환자에게 알렸을 때 좋아하셨지만 만들기를 시작하자 못하겠다는 말과 함께 진통제와 수액이 걸린 폴대를 밀면서 병실 밖으로 나가셨다.
“간호사선생님이 이해해요. 저양반이 아직은 못받아들여요.아직도 살아서…….병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정말 힘든 건…….저런 양반을 계속 지켜봐야하고 너무 더디게 가는 시간이예요.너무 답답해요.죽을날을 받아놨는데…….한편으론 그 시간이 안 왔으면 하다가도 그 시간을 너무 고통스럽게 보내야한다는 생각을 하면 빨리 하늘나라로 갔으면 해요”
보호자는 희망나무를 만드는 시간 내내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보호자는 희망나무에 걸어놓을 종이를 손에 들고 글자 한자도 적지 못하고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아빠가 호스피스 병동에 온지 오늘이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무서운 암덩어리는 계속 아빠의 몸에서 자라났고 이제는 진통제 없이는 숨을 실수도 편히 앉아있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호흡곤란과 답답함으로 병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병실 복도를 이동식 산소통을 옆에 두고 산소를 하면서 하루 종일을 거닐었다.
“시간 있어?”
이브닝 인계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스테이션에 나와 인계를 받고 있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하실말씀 있으세요?”
아빠의 얼굴엔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감이 보였기에 동료에게 잠시 인계를 미룰 것에 양해를 구하고 아빠 옆으로 갔다.
“경당으로 갈까요?”
“(작은 미소를 지으며)우리 데이트 하는 거야?”
“네. 우리 데이트 하러 가요”
“인계하는데 방해했는데 괜찮아?일해야하는거 아니야?”
“저한텐 지금 이 순간이 더 중요해요. 동료 간호사한테 말했으니 괜찮아요”
우린 그렇게 병동 바로 옆에 있는 경당(병원이 가톨릭병원이라 병원 안에 경당이 있었다)으로 향했다. 아빠는 암이라는 것을 진단받았을 때 처음 성당을 나가게 되었고 영세까지 받았다고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서도 미사에 나가셨었다.
“나 죽어?”
경당에 앉아 경당 앞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자꾸 목이 부어가. 나 죽을 것 같아.”
“목이 부은 것으로 죽진 않아요. 목이 부어서 불편한 것이지 죽진 않아요. 많이 불안하세요?”
“나 불안해. 너무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가족들한테 너무 미안한데…….잘해준것 하나 없는
그런 남편, 아버지였어. 너무 너무 불안해. 서있어도 불안하고 앉아있어도 불안하고…….”
“요즘 미사 나가시죠? 미사 시간에도 불안하세요.
“너무 너무 불안한데 불안해서 가만히 있기도 힘든데 정말이지...미사시간 1시간은 내가 가만히 있어”
그런 말을 하는 나는 아빠를 한동안 꼭 안아드렸다.
“보호자분,자녀분들,그리고 저를 포함한 여기 병동 사람들,우린 모두 조00님을 사랑해요. 너무 사랑하고 처음부터 함께 했었고, 앞으로도 우린 꼭 함께 할 거예요”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열고 난후 아빠하고 난 더욱 가까워졌다.
퇴근시간이 되어 근무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탈의실에서 나오는데 병실 복도에 산소를 하고 앉아있는 아빠를 발견했다.
“저 이제 퇴근해요.”
먼저 내가 말을 걸었다.
앉아있는 자신 옆에 앉기를 바라며 내게 손짓을 했다. 난 아빠 옆에 앉아 늘 그랬듯이 손을 잡고 눈을 맞추었다.
“집사람한테 너무 미안해.해준것 하나 없는데…….20살 때 가난한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엄청 하고…….이젠 내 간병한다고 잠도 못자고…….”
“보호 자분한테 사랑한다고 해보신적 있으세요?”
“아니…….너무 미안해서 그런 말도 못하겠어”
“자…….저랑 약속해요. 미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고 말하기로요. 처음엔 사랑한다는 말이 안나올꺼예요.하지만 자꾸 연습하시는거예요.저랑 약속하는 거예요?”
내 질문에 아빠는 대답대신 작은 미소를 보여주셨다.
어느날이었다.보호자분(부인)이 나를 급하게 찾았다. 한참을 울었는지 눈이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오늘은 나한테 35년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고맙다고 했어. 옆에 있어주어서 너무 고맙다고…….그렇게 고생을 할 땐 한마디 말도 없었는데…….오늘 고맙다면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자기 죽으면 잘살라고.”
데이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그날도 아빠는 병실 복도를 왔다갔다 거닐며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올해 몇 살이지”
“네, 서른이요”
“서른이면…….우리 둘째가 서른셋이니깐…….내 막내딸 하면 되겠네…….” “막내딸 할래?”
나에게 아빠가 생겼다. 언니도 2명이나 생겼다. 우연히도 우린 성이 같았다.
내가 출근 하는 날이면 다른 호스피스 환자도 간호하면서 아빠를 간호했다. 내가 오프 날이면 미리 내일이 오프라서 병원에 못나올 것이고 언제 다시 병원에 출근할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도 아빤 내가 안 나오는 날이면 스테이션에 다른 간호사에게 우리 막내딸 언제 오냐고 물으셨다고 했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의지하며 간호하며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나이트 출근을 한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5308호에 조00님이 많이 안좋으세요.소변도 안나오고,의식도 떨어지시고, 혈압도 50/30mmgh인데 보호자분이 1인실로 옮기시는걸 거부해요”
동료 간호사의 말 속에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었다.아빠가 있는곳은 5인실이라 임종을 할 수 없기에 1인실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병실로 황급히 들어갔다. 병실엔 보호자 부인과 두 딸들,그리고 두 딸의 사위가 아빠 곁에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본 보호자는(부인) 침대에 앉아 눈조차 뜨기 힘들고 아주 거친 숨을 힘겹게 몰아쉬는 아빠를 보고 말했다.
“여보, 당신 막내딸 왔어요. 그렇게 기다리고, 당신이 그렇게 귀찮게 하고,안나오면 왜 안 왔냐고 물어봤던 당신 막내딸이 왔어요. 눈 좀 떠봐요.”
이미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혀는 입 밖으로 나와 숨을 쉴 때마다 혀가 치아에 짓눌렸다.
나는 얼른 내 손가락으로 혀를 안으로 밀어 넣고 혀가 치아에 부딪히지 않도록 손가락을 치아 위에 놓이게 했다. 아직 혀가 따뜻했고, 침이 부드러웠다.
의식이 점점 소실해가면서 앉아있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힘들어 보였기에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고 눕히기로 했다.
침대 머리를 조심스럽게 눕히면서 혹시나 힘들어 하실까봐 계속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7개월 만에 아빠가 누웠다. 걱정과 달리 아빤 편안해 보였다.
“이제 1인실로 갈게요”
보호자가 말했다. 우린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아빠를 1인실로 모셨다.
1인실로 가자 보호자들이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내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시간이 임박했음을 느낀 나는 말했다.
“이제 우리 마지막 인사해요. 이 기회는 아마 다신 없을꺼예요.아빠 귀에 대고 편안하게 가시라고, 그리고 너무 사랑했다고 말해드려요”
“여보, 사랑해. 그리고 너무 고마워. 애들하고 잘살게. 내 걱정하지 마”
“아빠, 사랑해요. 편안하게…….그리고 이제 아프지 마세요”
“장인어르신, 사랑해요”
하나둘씩 아빠의 귓가에 사랑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조00님, 아니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제 아빠가 되주셔서,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아빠 막내딸…….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내 인사를 끝으로 그렇게 7월 어느 날 새벽 1시 30분, 아빤 하늘나라로 가셨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두 사위, 그리고 세 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빠는 세상 어떤 순간보다 편안해 보이셨다.
아빠가 그렇게 떠나시고 나이트 근무를 하면서 마음이 허전하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아빠가 나를 기다려 주심에 너무 감사드렸다. 막내딸 보고 가시려고, 나이트 근무를 하러 출근하는 나를 기다려 주신 것 같아 고마웠다. 막내딸로써 아빠의 임종을 지켜드릴수 있게 해주셔서, 그리고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장례를 치르는 3일도, 발인을 하는 날도 날씨가 아주 맑았다. 아마도 아빠가 편안히 잘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 같았다.
며칠 있으면 추석이다. 그동안 바쁘게 지내오면서 아빠를 잊고 지낸 것 같았다.
“여보세요!”오랜만에 아빠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흑흑흑…….)” 보호자(부인)이 내 목소리를 알아챘는지 울음을 터트리셨다.
“왜 우세요? 잘 지내셨어요? 지금 뭐하고 계셨어요?”
“밤까고 있었어.몇일 있으면 추석이잖아.제삿상에 올리려고…….작년까지만 해도 그 사람이 해줬는데…….지금은 없으니깐 내가 해야해.너무 보고 싶어”
“그동안 너무 힘드셨잖아요. 이제 아빤 편안하시잖아요.울지마세요”
“참, 어떻게 좋은 소식있어?이제 찬바람도 부는데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야지. 그 사람이 막내딸 생겼다고 좋아하면서 얼른 짝 만나서 가야 할 텐데…….하고 걱정했었어”
“아직 좋은 소식이 없어요. 하늘에 계신 아빠가 좋은 짝 보내주실것 같아서 전 걱정안해요”
“결혼할 때 꼭 연락해.그사람 대신…….꼭 가고싶어.행복한 모습 보고 싶어”
그렇게 전화를 끊고 한참을 가슴이 뭉클하여 일어 설수가 없었다.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로 5년을 지내면서 난 환자들에게 항상 내가 무엇인가를 준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빠와 지냈던 몇 개월을 생각해보면 내가 준 것보다 아빠는 나한테 더 큰 것을 주셨다. 우리가 함께 한다는것,그리고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다. 그것은 통증보다 통증을 낫게 하는 약보다 더 큰 것이었으며 호스피스라는 것을…….
그것을 기억하며 난 오늘도 호스피스 병동으로 출근을 한다.
“올해 몇 살이지”
“네, 서른이요”
“서른이면…….우리 둘째가 서른셋이니깐…….내 막내딸 하면 되겠네…….” “막내딸 할래?”
“막내딸이요? 저 이제 아빠 생긴 거예요?”
그렇게 난 아빠가 생겼다.
아빠(조 00님)를 처음 본건 어느 때와 같이 출근을 해서였다. 이브닝 출근을 해서 병실 라운딩을 돌고 있는데 처음 본 환자가 침대에 앉아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힘드신 것 같은데 누워 계세요”
“난 5개월 동안 누워본적이 없어요”
2009년 1월에 담도암 말기와 함께 폐전이를 진단받고 서울에서 항암치료를 몇차례했었으나 효과가 없었고 이후 급속한 병의 진행으로 오늘 아침에 우리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을 했다고 했다.
폐전이로 인해 누워서는 지낼 수가 없었고 낮이나 밤이나 침대에 앉아서 생활을 했었다고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환자마다 ‘희망나무’라는 것을 만든다. 나뭇가지를 화분에 심고, 부직포로 꽃과 잎을 만들어서 붙인 후 그곳에 환자 자신이 희망하는것,가족들이 희망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써서 희망나무에 걸어 침상 옆에 놓는다. 희망이 이루어 질수 있도록…….
난 그 다음날 출근을 해서 환자와 보호자(부인)과 함께 희망나무를 만들었다.
“난 못하겠어.하고싶지 않아”
“여보!.같이해요. 같이 만 들어봐요”
희망나무를 만들것이라는것을 환자에게 알렸을 때 좋아하셨지만 만들기를 시작하자 못하겠다는 말과 함께 진통제와 수액이 걸린 폴대를 밀면서 병실 밖으로 나가셨다.
“간호사선생님이 이해해요. 저양반이 아직은 못받아들여요.아직도 살아서…….병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정말 힘든 건…….저런 양반을 계속 지켜봐야하고 너무 더디게 가는 시간이예요.너무 답답해요.죽을날을 받아놨는데…….한편으론 그 시간이 안 왔으면 하다가도 그 시간을 너무 고통스럽게 보내야한다는 생각을 하면 빨리 하늘나라로 갔으면 해요”
보호자는 희망나무를 만드는 시간 내내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보호자는 희망나무에 걸어놓을 종이를 손에 들고 글자 한자도 적지 못하고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아빠가 호스피스 병동에 온지 오늘이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무서운 암덩어리는 계속 아빠의 몸에서 자라났고 이제는 진통제 없이는 숨을 실수도 편히 앉아있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호흡곤란과 답답함으로 병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병실 복도를 이동식 산소통을 옆에 두고 산소를 하면서 하루 종일을 거닐었다.
“시간 있어?”
이브닝 인계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스테이션에 나와 인계를 받고 있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하실말씀 있으세요?”
아빠의 얼굴엔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감이 보였기에 동료에게 잠시 인계를 미룰 것에 양해를 구하고 아빠 옆으로 갔다.
“경당으로 갈까요?”
“(작은 미소를 지으며)우리 데이트 하는 거야?”
“네. 우리 데이트 하러 가요”
“인계하는데 방해했는데 괜찮아?일해야하는거 아니야?”
“저한텐 지금 이 순간이 더 중요해요. 동료 간호사한테 말했으니 괜찮아요”
우린 그렇게 병동 바로 옆에 있는 경당(병원이 가톨릭병원이라 병원 안에 경당이 있었다)으로 향했다. 아빠는 암이라는 것을 진단받았을 때 처음 성당을 나가게 되었고 영세까지 받았다고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서도 미사에 나가셨었다.
“나 죽어?”
경당에 앉아 경당 앞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자꾸 목이 부어가. 나 죽을 것 같아.”
“목이 부은 것으로 죽진 않아요. 목이 부어서 불편한 것이지 죽진 않아요. 많이 불안하세요?”
“나 불안해. 너무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가족들한테 너무 미안한데…….잘해준것 하나 없는
그런 남편, 아버지였어. 너무 너무 불안해. 서있어도 불안하고 앉아있어도 불안하고…….”
“요즘 미사 나가시죠? 미사 시간에도 불안하세요.
“너무 너무 불안한데 불안해서 가만히 있기도 힘든데 정말이지...미사시간 1시간은 내가 가만히 있어”
그런 말을 하는 나는 아빠를 한동안 꼭 안아드렸다.
“보호자분,자녀분들,그리고 저를 포함한 여기 병동 사람들,우린 모두 조00님을 사랑해요. 너무 사랑하고 처음부터 함께 했었고, 앞으로도 우린 꼭 함께 할 거예요”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열고 난후 아빠하고 난 더욱 가까워졌다.
퇴근시간이 되어 근무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탈의실에서 나오는데 병실 복도에 산소를 하고 앉아있는 아빠를 발견했다.
“저 이제 퇴근해요.”
먼저 내가 말을 걸었다.
앉아있는 자신 옆에 앉기를 바라며 내게 손짓을 했다. 난 아빠 옆에 앉아 늘 그랬듯이 손을 잡고 눈을 맞추었다.
“집사람한테 너무 미안해.해준것 하나 없는데…….20살 때 가난한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엄청 하고…….이젠 내 간병한다고 잠도 못자고…….”
“보호 자분한테 사랑한다고 해보신적 있으세요?”
“아니…….너무 미안해서 그런 말도 못하겠어”
“자…….저랑 약속해요. 미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고 말하기로요. 처음엔 사랑한다는 말이 안나올꺼예요.하지만 자꾸 연습하시는거예요.저랑 약속하는 거예요?”
내 질문에 아빠는 대답대신 작은 미소를 보여주셨다.
어느날이었다.보호자분(부인)이 나를 급하게 찾았다. 한참을 울었는지 눈이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오늘은 나한테 35년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고맙다고 했어. 옆에 있어주어서 너무 고맙다고…….그렇게 고생을 할 땐 한마디 말도 없었는데…….오늘 고맙다면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자기 죽으면 잘살라고.”
데이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그날도 아빠는 병실 복도를 왔다갔다 거닐며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올해 몇 살이지”
“네, 서른이요”
“서른이면…….우리 둘째가 서른셋이니깐…….내 막내딸 하면 되겠네…….” “막내딸 할래?”
나에게 아빠가 생겼다. 언니도 2명이나 생겼다. 우연히도 우린 성이 같았다.
내가 출근 하는 날이면 다른 호스피스 환자도 간호하면서 아빠를 간호했다. 내가 오프 날이면 미리 내일이 오프라서 병원에 못나올 것이고 언제 다시 병원에 출근할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도 아빤 내가 안 나오는 날이면 스테이션에 다른 간호사에게 우리 막내딸 언제 오냐고 물으셨다고 했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의지하며 간호하며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나이트 출근을 한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5308호에 조00님이 많이 안좋으세요.소변도 안나오고,의식도 떨어지시고, 혈압도 50/30mmgh인데 보호자분이 1인실로 옮기시는걸 거부해요”
동료 간호사의 말 속에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었다.아빠가 있는곳은 5인실이라 임종을 할 수 없기에 1인실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병실로 황급히 들어갔다. 병실엔 보호자 부인과 두 딸들,그리고 두 딸의 사위가 아빠 곁에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본 보호자는(부인) 침대에 앉아 눈조차 뜨기 힘들고 아주 거친 숨을 힘겹게 몰아쉬는 아빠를 보고 말했다.
“여보, 당신 막내딸 왔어요. 그렇게 기다리고, 당신이 그렇게 귀찮게 하고,안나오면 왜 안 왔냐고 물어봤던 당신 막내딸이 왔어요. 눈 좀 떠봐요.”
이미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혀는 입 밖으로 나와 숨을 쉴 때마다 혀가 치아에 짓눌렸다.
나는 얼른 내 손가락으로 혀를 안으로 밀어 넣고 혀가 치아에 부딪히지 않도록 손가락을 치아 위에 놓이게 했다. 아직 혀가 따뜻했고, 침이 부드러웠다.
의식이 점점 소실해가면서 앉아있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힘들어 보였기에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고 눕히기로 했다.
침대 머리를 조심스럽게 눕히면서 혹시나 힘들어 하실까봐 계속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7개월 만에 아빠가 누웠다. 걱정과 달리 아빤 편안해 보였다.
“이제 1인실로 갈게요”
보호자가 말했다. 우린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아빠를 1인실로 모셨다.
1인실로 가자 보호자들이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내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시간이 임박했음을 느낀 나는 말했다.
“이제 우리 마지막 인사해요. 이 기회는 아마 다신 없을꺼예요.아빠 귀에 대고 편안하게 가시라고, 그리고 너무 사랑했다고 말해드려요”
“여보, 사랑해. 그리고 너무 고마워. 애들하고 잘살게. 내 걱정하지 마”
“아빠, 사랑해요. 편안하게…….그리고 이제 아프지 마세요”
“장인어르신, 사랑해요”
하나둘씩 아빠의 귓가에 사랑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조00님, 아니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제 아빠가 되주셔서,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아빠 막내딸…….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내 인사를 끝으로 그렇게 7월 어느 날 새벽 1시 30분, 아빤 하늘나라로 가셨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두 사위, 그리고 세 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빠는 세상 어떤 순간보다 편안해 보이셨다.
아빠가 그렇게 떠나시고 나이트 근무를 하면서 마음이 허전하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아빠가 나를 기다려 주심에 너무 감사드렸다. 막내딸 보고 가시려고, 나이트 근무를 하러 출근하는 나를 기다려 주신 것 같아 고마웠다. 막내딸로써 아빠의 임종을 지켜드릴수 있게 해주셔서, 그리고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장례를 치르는 3일도, 발인을 하는 날도 날씨가 아주 맑았다. 아마도 아빠가 편안히 잘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 같았다.
며칠 있으면 추석이다. 그동안 바쁘게 지내오면서 아빠를 잊고 지낸 것 같았다.
“여보세요!”오랜만에 아빠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흑흑흑…….)” 보호자(부인)이 내 목소리를 알아챘는지 울음을 터트리셨다.
“왜 우세요? 잘 지내셨어요? 지금 뭐하고 계셨어요?”
“밤까고 있었어.몇일 있으면 추석이잖아.제삿상에 올리려고…….작년까지만 해도 그 사람이 해줬는데…….지금은 없으니깐 내가 해야해.너무 보고 싶어”
“그동안 너무 힘드셨잖아요. 이제 아빤 편안하시잖아요.울지마세요”
“참, 어떻게 좋은 소식있어?이제 찬바람도 부는데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야지. 그 사람이 막내딸 생겼다고 좋아하면서 얼른 짝 만나서 가야 할 텐데…….하고 걱정했었어”
“아직 좋은 소식이 없어요. 하늘에 계신 아빠가 좋은 짝 보내주실것 같아서 전 걱정안해요”
“결혼할 때 꼭 연락해.그사람 대신…….꼭 가고싶어.행복한 모습 보고 싶어”
그렇게 전화를 끊고 한참을 가슴이 뭉클하여 일어 설수가 없었다.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로 5년을 지내면서 난 환자들에게 항상 내가 무엇인가를 준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빠와 지냈던 몇 개월을 생각해보면 내가 준 것보다 아빠는 나한테 더 큰 것을 주셨다. 우리가 함께 한다는것,그리고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다. 그것은 통증보다 통증을 낫게 하는 약보다 더 큰 것이었으며 호스피스라는 것을…….
그것을 기억하며 난 오늘도 호스피스 병동으로 출근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