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칼럼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2-07-25 오후 18:03:02

◇일과 육아 양립해야 하는 직장여성들
◇난 모성본능 없는가 자책하는 경우 많아

◇엄마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모성은 아이 키우면서 함께 배워가는 것


　많은 사람들에게 직업은 어쩌면 하나의 굴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교사는 “선생 아이가 성적이 이 모양이면 어떡하냐”는 소릴 듣고, 가족이 아프면 간호사는 “아니 간호사가 제 식구 안 챙기고 뭐 했냐”는 소릴 듣는다. 의학담당 기자를 하면서 간호사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 내 이름을 달고 쓴 기사에 소개됐던 내용인데, 정작 같은 증상이 내 아이에게 생기면 잘 눈치채지 못하니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직업을 가진 여성에겐 굴레가 하나 더 있다. 엄마라는 이름의 굴레다. 많은 직장여성들이 일도 놓치지 않으면서 엄마다운 엄마의 모습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으로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나 역시 그 많은 워킹맘 중 하나다.

　우리 사회에서 원하는 엄마의 모습은 `모성(母性)'이라는 단어에 집약된다. `모성본능'이라는 말이 흔히 쓰이고, 당연하게 여겨진다. 국어사전에서도 모성을 `여성이 어머니로서 갖는 정신적, 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부성(父性)은 제쳐두고 모성을 유독 본능과 동일하게 보는 이런 관점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모성을 선천적으로 타고 났고, 아이를 위해, 가정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의료현장에서 만난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신을 찾아온 많은 여성들이 모성본능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고 했다. 자신은 모성이 없는 것 같다며 자책을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힘들어진 게 아이 때문인 것 같고, 그래서 가끔은 아이가 미워지기도 한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뒤 그 아이로 인해 그동안 겪지 못했던 힘든 경험들을 한다면 원인은 아이 때문인 게 맞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자신을 힘들게 하는 존재가 미워질 때도 있을 수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엄마들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 난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가 되지 못할까 스스로를 나무라기까지 한다.

　집을 비우는 출장 때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하곤 한다. 일단 일터에 도착하면 아이 생각은 잠깐 내려놓고 일에 집중한다. 그러다 아이가 어디 아프다거나 친구랑 싸웠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누가 뭐라지 않았는데도 괜히 내 탓 아닌가 싶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최근 모성이 꼭 타고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좋은 근거가 바로 산후우울증이다. 세계적으로 아이를 낳은 여성의 10∼30%가 심하든 아니든 우울증을 겪는다고 한다. 모성이 정말 누구나 타고나는 본능이라면 이 많은 여성들의 몸이 우울증을 앓으면서까지 본능을 거부하려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한편에는 모성도 후천적으로 배워가는 거라는 주장도 있다. 말도 잘 안 통하고, 툭하면 아프고, 잠시만 눈을 떼도 사고 치는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들은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고, 예상치 못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배포를 기른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모성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모성이 본능이라는 근거로 많은 학자들이 호르몬을 들어왔다. 아이를 낳은 여성의 몸에서는 호르몬(옥시토신)이 나와 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르몬 분비는 개인에 따라 환경에 따라 차이가 크다. 모성을 발휘하고 싶어도 시간 여유는 없고 엄마로서의 의무는 그대로 주어지는 지금 같은 사회라면 여성의 몸에서 호르몬이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엄마라는 이름이 많은 여성에게 굴레가 되는 이유는 여성이라면 꼭 본능적으로 모성을 발휘해야 한다거나, 엄마는 항상 엄마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 굴레에 갇혀 있다 보면 엄마 자신도, 엄마의 일도, 엄마의 아이도 행복해질 수 없다. 일도 아이도 가정도 모두 지키려면 누구보다 여성 스스로가 먼저 그 굴레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와 함께 자라면 된다. 차근차근 모성을 배워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