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간호조직 '살아있는 비젼' 만들어야
박개성(엘리오앤컴퍼니 대표)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6-06-22 오전 11:05:45

비전에 대한 강의를 할 때, 국민교육헌장이 어떻게 시작되느냐고 묻곤 한다. 만든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어느 병원 할 것 없이 자동적으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줄줄 왼다. 게다가 발표한 날짜까지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런데 귀 병원의 이념이나 사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알고 있는 경우에도 캐치프레이즈 정도를 외울 뿐 비전에 나오는 문구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가장 불행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라고 하듯이, 가장 불행한 비전은 잊혀진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전에 대한 별다른 견해도 없을 뿐 아니라, 비전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비전에 대해 이런 저런 논의가 일어난다는 것은 병원에 대한 애정이 있고 병원에 활력이 있다는 방증이다.
**잊혀지는 비전의 특징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만, 자신의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직장에 대한 비전을 외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인 세 가지를 이야기 해보자.
첫째는, 대충 만든다. 한 아이의 미래를 설계할 때에도 아이의 취향, 장점 그리고 미래 직업의 전망 등을 세밀히 살피는 노력을 한다. 그런데 수백 수천 명이 모여 있는 조직의 비전을 만들면서 주위 병원의 것을 모방해 만든다.
심한 경우에는 전문성이 미흡한 사람들이 홈페이지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장식품처럼 서둘러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병원의 비전과 전략이 매우 닮아 있다.
둘째, 소수만의 작품이다. 진지한 노력을 하는 경우에도 구성원들의 참여를 소홀히 한다. 기업도 그러하지만, 강력한 경영자가 없는 병원의 경우에는 병원장의 의지 못지않게 구성원들의 의견이나 정서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비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설문이나 인터뷰, 분석결과에 대한 의견수렴 등 다양한 참여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이 없이는, 아버지만의 희망이 담겨있는 가정의 비전을 가족들에게 강요하는 셈과 같다.
셋째, 일회성 이벤트로 생각한다. 비전을 잘 만들기도 어렵지만, 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실행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비전은 목표이고, 전략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이다.
전략이 실행되게 하는 엔진은 비전에 대한 조직 구성원의 공감대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적인 차원에서 비전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한 번의 비전 수립으로 병원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아버지의 감동스런 말 한마디로 아이가 바뀌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 비전은 보이지 않는 리더
최근에 병원들이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비전과 전략을 대충 수립하거나, 수립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실행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 결과 비전과 전략이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기 보다는 `비전과 전략을 세워보아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마치 진단과 처방을 잘못하거나, 처방대로 이행하지 않고는 약을 탓하는 것과 같다. 약을 잘못 쓰면 약에 대한 내성만 키우듯이, 비전과 전략 등 혁신노력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변화에 대한 조직의 저항력만 키우게 된다.
모든 변화의 진원은 병원장이 돼야 한다. 그런데 2~3년의 짧은 임기, 미흡한 권한, 임기 후 다시 교실로 복귀하는 구조에서는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병원장이 바뀌면, 원칙없이 우선순위가 바뀌고 경영 방침이 바뀌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거나 확인하기 어려울 뿐이지만,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체계적이고 공감대를 형성한 비전과 전략은 병원장의 잦은 교체에도 불구하고 병원의 지향점을 유지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리더' 역할을 한다. 기업의 경우에도 특정 개인이 리더가 아니라, 비전이 리더가 돼야 훌륭한 조직이다. 병원장의 개인적인 카리스마를 형성하는 것보다 병원이 열정을 가지고 추구해야 하는 비전을 리더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역할이다.
이러한 역할이 비단 병원장에게만 요구되는 것일까? 간호사는 병원에서 가장 인력이 많고, 병원의 이미지 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다. 하지만 조직 만족도는 낮고, 이직률은 높은 편이다.
이를 극복하는 첫걸음은 간호조직 내에서 `보이지 않는 리더'인 간호조직의 비전을 세우는 일일 것이다.
# 박개성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고 있다.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의료기관 경영혁신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와 연구를 수행했다.
박개성(엘리오앤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