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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간호문학상 소설 가작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11-12-15 오전 09:53:09
- 임미진 (안양샘병원)

굽이진 시골길 끝으로 곧 바스러질 집이 한 채가 보였다. 포장되지 않아 흙연기가 뽀얗게 날리는 길 위로 보이는 집은 뿌옇게 보여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먼저 기다리고 있을 형제들의 차로 보이는 것이 집 앞으로 있는 것을 보고는, 좀 더 차의 속력을 높였다.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져 오니 집의 형체가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파란 기왓장을 얹고 군데 군데 구멍 뚫린 곳도 있는 지붕을 가지고 흙과 벽돌로 쌓아올린 나와 형제들의 집, 내가 떠나온 집, 아직도 어머니의 숨결이 느껴질 듯한 집이 보였다. 집이 가까워져 오자 속력을 늦추고 대문 앞마당에 차를 대충 세우고는 차에서 내렸다.

"이제 오니."

하며 먼저 기다리고 있던 큰 형이 인사를 한다.

"오랜만이예요, 형."

하고 조금은 어색한 인사를 받으며 형의 옆으로 가서 섰다.

근 1년 만에 보는 집은 좀 더 군데군데 거미줄도 쳐져있고, 색도 바래져있어 낡아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숨결은 그대로인 듯하였다. 도착하는 차 소리가 들리면 버선발로 뛰어나와 나를 반겨주시던 어머니가 서 있던 대문 앞에서니 어머니의 숨결이 피부에 닿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고, 유년기의 추억이 가득하고, 아직도 어머니의 숨결이 가득 차 호흡하는 이 집을 떠나보내야 한다.

“어서 나와라, 막내야. 이제 시작해야지. 나 일 때문에 얼른 서울 올라가봐야 한다.”

큰 형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외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네.’ 라는 대답과 함께 대문을 나섰다. 집을 떠나보내기 전 형제들과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와 곧 바스러질 대문을 보고 있자니 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았다.

“시작할까요?”

크레인을 운전하는 기사가 하는 말에 큰 형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 형의 고개 짓에 차에 오르려던 기사를 멈춘 건 나였다.

“잠깐만요!”

“또 왜 그러니.”

이번엔 큰 누나였다. 모두들 일이 바쁜 듯 시계를 들여다보고, 누군가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바쁜 시간 쪼개서 여기 모인 것을 알고 있다. 우리 6남매가 모인 것이 이번이 도대체 몇 년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형도 있고, 꼭 가야하는 사모임에 참석해야 한다는 누나도 있다. 몸이 불편한 작은 형도 있고, 손자가 끝날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해야 한다는 작은 누나도 있고, 회사에 가봐야 한다는 막내 누나도 있다. 모두들 바빴지만, 나는 시간을 늦추고 싶었다.

“먼저들 올라가세요. 저는 집 한번 다시 둘러보고 정리하고 올라갈게요.”

내가 자라 온, 우리 6남매가 출가하기 전까지 자라 온 집이 정리되는 그 시간을 늦추고 싶었다.

마치 나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허락을 구했다는 듯, 부랴부랴 각자의 차에 올라 탄 누나와 형들은 뒤를 부탁한다는 짧은 인사를 하고는 뽀얀 연기를 남기고는 길을 떠났다. 굽이 진 좁다란 시골길을 망설임도 없이 저 멀리 빠져나가는 형과 누나의 뒷모습을 보다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내가 자라 온, 추억으로 쌓인 담 안의 집을 보았다. 기다리던 인부들에게 죄송하단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은 집으로 발을 내딛었다.

지난 며칠 전 큰 형에게 연락을 받았다. 집 뒤에 있던 조그만 창고가 불에 타버렸다는 소식이었다. 이 집을 지키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1년. 우리 6남매가 찾지 않은 이 집은 동네 비행소년들의 차지가 되었다고 했다.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고, 가끔은 자고 가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다 제대로 끄지 않은 담배 불씨 하나로 인해 집 뒤에 있던 창고가 불에 타버렸다는 것이었다. 놀라 입을 떡하니 벌리고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한 내 귀에 이어 들린 것은 이참에 집을 허무는 것이 낫겠다는 형의 말이었다.

‘어차피 가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관리도 힘들고. 거기서 누가 사는 것도 아닌데, 굳이 유지하지 않아도 되잖아? 이참에 허무는 것이 날 것 같아. 그리고 어머니도 그걸 원하고 계실지도 몰라. 다른 애들하고 얘기해봤는데, 다른 애들도 동의하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형의 말은 분명 물어오고 있었지만, 이미 정해진 대답을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나는 그런 형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용히 나의 대답을 기다리던 형은 나의 침묵이 동의라고 생각한 듯 일단 지금 바쁘니 날을 잡아 알려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받은 전화에서 형은 날짜를 잡았다며 오늘을 알려 주었다.

나만 전화를 받고 싱숭생숭 했던 건 아니었던 듯, 막내 누나가 전화 와 이래도 될까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다 이미 정해진 일인데 어쩌겠냐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냥 마음을 접기로 했다. 다른 형제들이 동의하고 나 혼자 동의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집을 허물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이곳에 내려와 살 형편은 되지 않았으니까.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있자,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인지 나의 아내는 형의 말대로 그 것을 어쩌면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며 나를 위로했다. 옷도,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도 모두 다 태워 하늘로 보내드렸는데, 어머니가 사실 집이 없지 않냐며 나에게 위로를 건내는 아내의 말에 마음을 접었다.

그렇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커보이던 대문은 작아졌고, 사람이 자릴 비운 집이란 것을 표하듯 집의 군데군데에는 거미줄이 쳐져있었다. 서로를 받쳐 주던 대들보는 낡아 금이 갔고, 마루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삐그덕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곳곳에 먼지가 쌓이지 않은 곳이 없었고, 형이 한 말이 사실이었는지, 담배꽁초와 빈 소주병 몇 개가 집 안에 의미 없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지난 1년 만에 어머니가 계실 땐 어머니의 손길이 군데 군데 닿아 윤기가 나는듯하던 집이 주인을 잃자, 흙으로 쌓아 올린 담이 손만 닿아도 금방 부스러질 듯 빛을 잃고 낡아 있었다.

어렸을 땐 참 이 집이 싫었었다. 멋지지 않은 이 집이, 기왓장을 올리다 기왓장이 모자랐던 듯 철제 하나를 덮은 모습 하고는 볼품이 없어 보였다. 작년 여름 태풍 때 결국 그 철제는 태풍을 이기지 못하고 저편으로 날아가 앞 집 뒷마당에 심어져 있던 나무에 흠집을 냈더랬다. 그 덕분에 마당에 설치되 있던 수돗가는 지붕을 잃어버리고, 햇빛이 여실히 들어와 마루까지 비추고 있었다. 먼지 쌓인 마루에 앉아 잃어버린 철제 지붕의 자리를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햇빛이 어찌나 따사로운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눈부시게 빛나 눈물이 나올 듯 했다.

따가운 햇살이 너무 눈에 부셔 인상을 찡그리다 고개를 돌린 나의 눈엔 대문 앞에 있는 작은 문간방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작은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해준 방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큰 방을 내어드리고, 부모님에게 그 다음 큰 방을 내어드리고, 작은 방 두 개의 방은 우리 여섯 남매의 차지였다. 크지도 않은 방에 형 두 명과 나란히 잘 때면, 친구 한명 초대해서 재우지도 못하는 그 방이 부끄러워 눈물도 흘린 적도 있었다.

사회에 나와 집장만 하나 하기 힘들어 한 숨 쉴 때가 돼서야 그 방이 부끄럽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었다. 발도 제대로 뻗지 못하던 좁은 방이었지만, 그래서 외로움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던 그 집에서의 생활이 부유하진 못했어도 마음이 풍족했더라는 것을 기족들 모두 나가 텅 비어 있던 집에 누워서야 알 수 있었다.

작은 문간방의 문을 여니 흙내음이 풍겨져 나왔다. 어린 시절의 냄새였다. 먼지가 가득 쌓인 방이었지만, 신발을 벗고 맨 발로 들어가 방 가운데 앉으니 뽀얀 먼지가 두둥실 떠올랐다. 먼지 냄새가 날 법도 한데, 방 안에 앉아 있으니 집의 흙내음이 코를 간지럽혔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이 방은 문의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다른 방들보다 유난히 흙냄새가 많이 났었다. 그래서 어렸을 적 가족 모두 모여 밥을 먹었었지만, 가끔 따로 방에서 밥을 먹을 땐 평소에 먹던 밥의 반도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내려놓곤 했었다. 밖에서 맛있다고 사온 음식도 방에서 먹으면 얼마 먹지 못하고 손을 떼고는 했다. 음식에서 특유의 냄새와 맛이 나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엔 싫었던 냄새였을지 몰라도, 커서는 달랐었다.

자라서 본 세상은 잔인하고 혹독한 면이 너무 많아,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세상에 상처 받고 학교를 휴학하고 1년 정도 앓아 누워있던 적 있었다. 뚜렷한 병명은 없었지만, 그 당시의 상처가 너무 커 어느 음식도 입에 대지 못하고 고통에 밤새 몸부림치다 결국 시골집으로 내려갔었다. 10kg 가까이 빠져 거의 산송장의 몰골로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어머니는 성공하라고 서울로 보냈다가 아들이 죽어 돌아왔다며 날 붙잡고 펑펑 우셨다. 그런 어머니를 달래지도 못하고 나는 대문 앞에 어머니와 풀썩 쓰러져 그저 멍하니 나의 어린 모습이 서 있는 방안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던 어린 시절이 너무 그리워서, 멍하니. 그런 나를 방에 눕히고 상을 차려 오신 어머니는 상 앞에서도 눈물이 가득 찬 눈을 가지고 계셨지만, 눈물을 꾹 참으시며 숟가락을 드셨다.

“먹어야지 산다.”

그 말만 하고 굳게 다문 어머니의 입에선 작은 울음소리 하나 새어나오지 않았다. 처음엔 다 토할 것이 뻔해, 음식을 거부하던 나는 숟가락을 들고 억지로 나의 입술 사이로 밀어 넣던 어머니의 모습에 억지로 음식을 씹어 넘겼다. 그리고 음식을 넘기는 순간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의 환영을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무 것도 모르던, 잔인하고 혹독한 세상을 모르던 그 때로. 흙내음이 나던 그 때의 밥으로 빛을 잃고 죽어가던 나는 기적적으로 다시 빛을 찾고 살아 날 수 있었다.

방의 흙내음에 어린 시절을 비상하고, 다시 기운을 얻은 나는 방을 나와 먼지가 묻어 더럽혀진 손을 씻기 위해 방 옆에 있던 수돗가로 향했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왼편에 내가 쓰던 문간방이 있고, 문간방 뒤쪽으로 수돗가와 짚이나 뗄감들이 놓여있던 작은 창고가 있었다. 작은 창고 옆으로 누나들이 쓰던 작은 방이 있고 그 옆엔 뒷문이 있었다. 수돗가 건너편으로 안방 2개가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는 여름이면 수돗가에 줄지어 등목하고 물장난을 치던 우리 남매들을 마루에 앉아 웃으며 바라보시고, 창고에서 밭에서 캐온 작물들을 손질하며 장난치던 우리를 혼내곤 하셨고, 안방 옆에 있던 부엌에서 어머니는 그만하시라며 아버지를 달래곤 하셨다. 벌써 몇십년이 지난 일들이지만 너무 뚜렷하게 흑백영화처럼 내 눈 앞에 필름이 흘러가는 듯 했다.

마치 그 때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나와 웃음을 흘려보내다 수도꼭지를 돌렸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도관이 삭은건지, 아니면 수도가 끊긴건지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를 몇 바퀴 돌리다 포기하고 옆에 놓여있는 펌프를 힘을 실어 내렸다 올렸다가 반복했다. 몇 번 행동을 반복하자 물이 실려 올라왔다. 얼음장 같은 지하수로 손을 씻고 깨끗해진 손을 옷에 대충 닦고는 고개를 들자 수돗가의 건너편의 부엌이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닫혀 있어서 그런지 부엌의 문은 무겁고 빡빡하여 ‘삐그덕’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굳게 닫혀 있는 나무 문 사이로 가늘게 들어오는 햇살에 이끌려 건너편에 있는 문까지 여니 부엌에도 환하게 빛이 가득 찼다.

우리 집 부엌은 가마솥이 있고, 아궁이가 있는 옛날식 부엌이었다. 이곳에서 어머니는 항상 하나의 가마솥엔 물을 끓이고, 하나의 가마솥엔 대가족의 밥을 하셨다. 새벽녘과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밥을 짓고 가마솥의 무거운 뚜껑을 열면 집 안 가득 고소한 밥내음이 찼다. 밥내음이 집안 가득 차면 나는 고소한 그 냄새에 홀려서는 안방으로 들어가 할아버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어머니의 손 맛으로 가득찬 식사상을 기다렸다. 부엌에서 누나와 함께 식사를 준비해서 안방으로 밥을 가지고 가면 윗목에선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버지와 형들이, 아랫목에선 누나들과 어머니가 식사를 하셨다. 집안 어른들이 식사를 다 하실 때쯤이면 어머니는 다시 부엌으로 나와 물을 가지고 방에 들어오셔서는 어른들께 입가심 물을 드렸었다.

겨울이 되면 아궁이에 아버지가 가득 패어놓은 장작을 넣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장작을 넣어 놓는 것에 맛 들려 계속 기침을 콜록이며 하다가도 아궁이에 가득 장작을 채워 넣어, ‘탁탁’ 하며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멀찍이 앉아 잠이 들기도 했다. 형이나 누나가 고구마나 감자를 호일에 쌓아 아궁이 안으로 던져 넣어 놓고 구워질 동안 다시 놀러나가면 아궁이 앞에 앉아 있다가 혼자 꺼내 먹어 누나나 형들에게 몇 대 맞기도 하였었다.

지금은 밥내음과 어린 시절의 나는 사라진 이곳에 서니 아궁이 앞에 다시 피어올라 쭈그려 앉아 있는 어린 시절의 나의 환상이 눈에 어른거리는 듯해 웃음이 나왔다.

부엌에서 나와 고개를 돌리니 부엌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안방이 눈에 들어왔다. 부엌의 문을 다시 닫고 나와 터벅터벅 걸어가 집의 본채의 마루 앞에 다시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랐다. 부모님이 쓰시던 안방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고 두어번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들을 수 있었다.

“들어오거라.”

라고 항상 같은 톤으로, 같은 빠르기로 들리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덜컹 하며 열린 창호지가 발라진 문에는 작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어머니가 계실 적엔 항상 작은 창호지가 덧대어져 바람이 통하지 않던 문이었는데, 문도 어머니를 잃어 구멍이 나있었다.

내가 쓰던 방의 두배 정도 되는 안방은 텅 비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가 아끼시던 가구와 물건들은 모두 태워 어머니 곁으로 보내드렸고, 그 외의 물건들은 버리거나, 누나들이 가져가거나 했기 때문에 비어 버린 것이 당연했다.

문을 들어오자마자 보인 창문 위에는 몇 개의 못이 박혀 있었다. 액자가 걸려 있던 곳이었다. 시골의 어느 집이나 그렇듯 우리 집에서 돌아가신 조상님이나 출가한 가족들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께서 직접 못질을 하시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진을 걸고 아버지는 아침마다 사진 앞에서 절을 하시고, 어머니는 액자를 닦으셨다. 마치 살아계신 그 분들의 얼굴을 닦는 조심히, 정성들여서. 나는 어린 시절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하며, 멍하니 바라보곤 했었다.

“어머니, 힘드시지 않으세요? 매일 아침 액자 닦으시는 것. 하루 만에 먼지가 쌓이진 않잖아요.”

어린 나의 철없는 질문에 어머니는 방그레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그렇게 말하셨다.

“힘들기는. 오히려 액자를 닦으며 너의 할머님, 할아버님의 얼굴을 들여다 볼 때면 항상 어머니 곁에 계시다고 말씀 해주시는 것 같아서 힘이 나는 걸.”

형이 일 때문에 도시로 떠나고, 누나들이 출가하고, 한명한명 가족들이 집을 떠날 때마다 걸리는 액자 수는 많아졌다. 아버지의 사진, 누나의 가족들 사진, 형의 가족들 사진, 나의 가족들 사진. 어머니는 매일 아침 액자를 하나하나 손수 다 닦으시며 가족들 사진을 흐뭇하게, 혹은 외롭게 바라보시고는 했다. 항상 그리워하셨던 것이다. 항상 곁에 있었으면 좋았겠다, 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홀로 있는 이 집에서의 시간 동안 집을 떠난 우리를, 일주일에 두 번 전화하면 많이 전화한 우리를 이 집을 홀로 지키시며 항상 그리워하셨던 것이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아 방을 나왔다. 급하게 문을 닫고는 문에 기대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가 그러하셨듯 눈물을 참고 싶었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린 나의 눈에 살짝 열린 뒷문 사이로 열매를 맺은 살구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마루에서 내려와 신발을 다시 신고 걸어가 삐그덕 하는 나무문을 밀어 열었다.

문이 열리고 햇빛을 받고 황금색으로 빛나는 살구나무가 여실히 내 눈으로 들어왔다. 수명이 나만큼 됐을 이 나무는 이 자리에서 한발도 떠나지 않고, 어머니를 우리 집을 지키고 서 있었다. 주황색의 열매를 몇 개 떨어뜨린 살구나무는 눈이 부셨다. 나는 이 나무를 좋아해 이 나무 아래서 책을 읽다가 잠들기도 했고, 나중에 출가해서 집에 올 때면 항상 딸아이에게 이 나무를 보여주었다. 딸아이가 이 나무 아래서 아장아장 뛰어놀며 살구 열매를 고사리 같은 손에 쥐고 신기하게 바라보고 할 때면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 나무도 같이 사라진다. 집과 함께, 나의 어린 시절과 함께, 어머니와 함께.

무언가로 가슴을 맞은 듯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눈물이 뚝 흘러내렸다. 어머니가 그리웠다. 이 집을 잃으면 정말로 잃어버릴 듯한 어머니가 그리웠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리웠다. 이 집을 잃으면 정말로 잃어버릴 듯한 어린 시절이 그리웠다.

입 술 사이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올 것 같아 한 팔로 입술을 막고, 한 팔로는 살구나무를 잡았다.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까진 막을 길이 없어 눈물은 흘려보냈다. 나이 사십 줄에 들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에 치여 이 집에 대한 마음을, 잊고 지낸 그리움을 떠올린 내가 자랑스러워 나는 결국 목을 놓아 울고 말았다.

“시작하세요.”

눈물을 닦고 대문을 나선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 짜증이 얼굴에 드러나 있는 인부들에게 말을 하곤 고개를 돌려 마지막으로 집을 보았다.

내가 집에 올 때면 버선발로 뛰어나와 ‘어서 오거라. 힘들진 않았니?’ 라고 말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잠시 나갔다 올 때던 다시 서울에 올라갈 때던 집을 떠나게 되면 ‘조심해서, 잘 다녀오거라.’ 라고 인사를 해주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간다.
  • 아주대 대학원 간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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