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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깨어나서
이덕향(청주 효성병원 내시경실 파트장)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8-04-03 오후 02:17:43

화려한 밤의 시간이 아닌 고요한 새벽의 시간이다. 세상 모든 것이 잠들어 있을 지금, 시간은 이제 어둠의 강을 따라 미명의 바다에 이르렀다. 정신은 맑았지만 몸이 무거워 이불속에 누운 채 그대로 있어 본다. 불도 켜지 않고 눈을 감고서 소리에 집중한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고래의 울음처럼 그리움에 차있다.

건너편 아파트의 불 꺼진 창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잠들어 있을까? 지친 일상에서 이 시간만큼은 모두 평안한가요? 악몽은 꾸지 말고 좋은 꿈만 꾸세요. 햇살이 아침 창을 두드릴 때까지. 그들의 편안한 휴식을 기원해 본다.

내시경실에서 일을 하는 나는 매일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외래 내시경실이기 때문에 진짜 아픈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먹고 사는 게 우리네 일상인데 그 소중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찾아온다. 식도와 항문으로 쏟아지는 붉은 피의 근원지를 찾아서 의료진들은 굵은 땀방울을 흘린다. 손에 마비가 와도 내시경을 멈추지 않고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싸우는 뜨거운 마음이 느껴지는 곳이다. 환자들은 괴로움을 참으며 의사의 지시를 말없이 따른다.

신 앞에서, 아니면 자기 자신들 앞에서, 환자들은 처음 태어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검사대에 눕는다. 나이가 많아도 아이가 되고, 돈이 많아도 몸은 아픔으로 가난하다. 신이 내린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적어도 여기서는 모두가 그냥 신 앞에서 평등할 뿐이다. 최선을 다해 일찍 발견하고 일찍 치료할 뿐, 우리는 모두 신의 뜻에 따른다.

과거의 자신을 찾기 힘든 노인들이 있다. 검은 얼굴에 그 몇 배나 되는 크기로 복수가 찬 간경변 환자들도 있다. 구축으로 팔과 다리가 나무토막같이 변해 버린 위루술 환자들도 있다. 피를 토하면서도 삶을 초월한 것인지 고요하게 순한 눈만 껌뻑이는 알코올중독자들도 있다.

예전엔 그들도 나와 같은 때가 있었으리라. 화려하게 웃었던 젊은 날들이, 행복에 젖어 노래 부르던 그런 날들이, 혹은 누군가에게 호기롭게 소리를 지르면서 자신만만하게 살았을 그런 날들이.

짧은 순간 또 다른 그들의 표정을 볼 때가 있다. 망가져버린 얼굴에선 어느새 독기가 빠지고 없다. 힘은 없지만 착한 눈빛이 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들의 표정에서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을 보게 된다. 체념인지, 신에 대한 복종인지, 알 수 없는 그들의 표정들이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들 같다. 그들의 얼굴엔 괴로움이 없다. 그런 표정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들은 아파하고 견뎌오고 슬퍼했을까? 잠시 인간적인 연민으로 마음이 아리다.

매일 그들을 보면서 나를 돌아본다. 나도 신과 자연 앞에서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언젠가는 그들이 겪은 과정들을 거치며 나도 신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가엾다고 동정할 수 없는 이유고, 그들 앞에서 잘난 척 할 수 없는 이유다. 그들이 나보다 먼저 태어났기에 먼저 가고 있을 뿐, 나도 한발씩 그들의 뒤를 따라 신에게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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