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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간호문학상 소설부문 가작
지상에서 남기는 마지막 한마디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2-01-17 오전 10:30:25
마지막으로 하실 말이 없습니까?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동안의 인생이 후회되지 않습니까? 고통이 느껴지나요? 마지막 한마디를 해주십시오!
벌써 여러 날 플래쉬와 발자국소리가 요란한 기자들이 들락거려 질문을 퍼붓고 있다. 병원측이 아무리 제지해도 그들은 그것을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싶다.
그래, 나는 원인불명의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최첨단의 의학으로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는 희귀한 병으로 죽어가는 나는 의사들의 실험대상일 뿐이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마음속 깊이 죽음을 갈구했는가를, 그래서 지금은 기쁘다는 사실을.
○○신문의 문화부 기자인 오창렬은 오늘도 정수아의 병실 앞에서 서성거렸다. 처음엔 정수아씨 유언건을 특집으로 삼으라는 사장의 명령을 듣고 죽음의 문을 열려고 하는 사람에게 고약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그는 그녀에 대한 자료나 그녀가 쓴 저서를 읽고 유언은 가장 순수한 결정체라 여기고 있었다. 이제 그는 정수아씨가 죽기를 바라는지, 아님 살기를 바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하루가 지났다. 아직도 나는 죽지 않았다. 병원으로 온 것이 실수였을까! 내 죽음은 자유의지를 무시한 채 그저 각종 기구의 선들에 의해 연장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죽음을 느끼고 있다. 감각들이 무뎌지고, 추워지고 있다. 그런데 생각들은 담배를 피는 사람이 내뿜는 연기처럼 계속 퍼지고 있다. 나는 그 연기를 다시 빨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인가!
20대에 엄마의 죽음 이후로 난 호스피스 간호사로 지원했다. 평생 마늘만 찧어오던 등 굽은 엄마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 당시는 그저 슬펐고 외로웠을 뿐인데. 호스피스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마지막 한 마디를 들어주었다. 마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것인 양 그렇게 그 자리를 지켰다.
언제부터인지 간호사라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근무와 간간이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나무라는 상사－하지만 그들에겐 말이 되었겠지－누군가를 찍는 듯한 태도, 출세지향적인 동료들의 모습과 길들여지는 나를 느낀 순간부터 내 정신에선 이미 곰팡이가 한창 피어 있었다. 고인 물은 썩어 가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몰라도 그 말은 맞는 말 같다.
그러나 그 이유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었던 것은 굳이 아니라고 할 수밖에. 심마니가 `삼'에 집착했던 것처럼 나도 `지상에서 남겨지는 말 한마디'에 집착하게 되었을 뿐. 그리고 죽는다는 사람이 있으면 까마귀처럼 주위를 맴돌게 되었다.
이름만 거론해도 `아, 그 사람' 하고 떠올릴 사람들, 비명횡사하여 제명대로 못다한 사람들,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 자살한 사람들, 가스폭발사고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그 곳에 있던 사람들, 심지어는 돌풍으로 날아온 나무에 맞아 죽은 사람들, 백혈병이나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 등등 이런 모든 사람들의 죽기 직전에 단 한마디를 들으려고 쫓아다녔다.
가족이나 병원 관계자는 처음에는 누군지 모르고 그냥 내버려두다가 소문이 퍼지자 내몰았다. 촌구석 어느 집에서는 여자라고 때리지는 않았지만 막걸리를 뒤집어썼고, 병원에서는 멱살을 잡혔고, 사고현장에서는 경찰이나 대원들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기를 쓰고 쫓아다녔고 무수한 사람들이 남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한 마디를 기록해갔다.
그렇게 죽음의 역으로 가는 사람들이 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떠났는지 묻고 다닌 이유는 글쎄, 죽음을 앞둔 나도 그 이유를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 이젠 지쳤다. 내일도 죽지 않고 눈을 뜬다면 내일 생각하고 싶다.
“오 기자, 정수아씨는 무슨 말을 하고 세상을 하직할 것 같은가?”
“글쎄요. 선배는 그 까마귀 아니 정수아씨가 유명한 말을 남기리라 생각하십니까? 왜 나는 그녀가 이런 일을 택했는지 모르겠어요. 평범한 외모로 봐서는 그저 평범한 생을 살았어야 하는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 기자는 선배이면서 대학교수인 김형준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정수아는 죽음 근처에 있는 사람들 주위를 맴돈다고 까마귀라는 별명이 붙은지 오래되었다.
“오 기자는 그녀가 강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나는 봤지. 내가 보기엔 그녀는 어린시절 아픔이 컸던 것 같아. 한 학생이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었지. `교수님은 사랑을 못 받았다는 열등감 때문에 보상하려는 의미에서 우표수집처럼 유언을 수집하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하고 묻자 그녀는 웃었지. 정말 크게 웃었어. 모두가 놀랄 정도로 말이지. 그녀가 뭐라 했는지 궁금하지 않나?”
“아마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그 말도 정답에 포함된다고.”
“오 기자가 재치있
벌써 여러 날 플래쉬와 발자국소리가 요란한 기자들이 들락거려 질문을 퍼붓고 있다. 병원측이 아무리 제지해도 그들은 그것을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싶다.
그래, 나는 원인불명의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최첨단의 의학으로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는 희귀한 병으로 죽어가는 나는 의사들의 실험대상일 뿐이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마음속 깊이 죽음을 갈구했는가를, 그래서 지금은 기쁘다는 사실을.
○○신문의 문화부 기자인 오창렬은 오늘도 정수아의 병실 앞에서 서성거렸다. 처음엔 정수아씨 유언건을 특집으로 삼으라는 사장의 명령을 듣고 죽음의 문을 열려고 하는 사람에게 고약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그는 그녀에 대한 자료나 그녀가 쓴 저서를 읽고 유언은 가장 순수한 결정체라 여기고 있었다. 이제 그는 정수아씨가 죽기를 바라는지, 아님 살기를 바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하루가 지났다. 아직도 나는 죽지 않았다. 병원으로 온 것이 실수였을까! 내 죽음은 자유의지를 무시한 채 그저 각종 기구의 선들에 의해 연장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죽음을 느끼고 있다. 감각들이 무뎌지고, 추워지고 있다. 그런데 생각들은 담배를 피는 사람이 내뿜는 연기처럼 계속 퍼지고 있다. 나는 그 연기를 다시 빨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인가!
20대에 엄마의 죽음 이후로 난 호스피스 간호사로 지원했다. 평생 마늘만 찧어오던 등 굽은 엄마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 당시는 그저 슬펐고 외로웠을 뿐인데. 호스피스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마지막 한 마디를 들어주었다. 마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것인 양 그렇게 그 자리를 지켰다.
언제부터인지 간호사라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근무와 간간이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나무라는 상사－하지만 그들에겐 말이 되었겠지－누군가를 찍는 듯한 태도, 출세지향적인 동료들의 모습과 길들여지는 나를 느낀 순간부터 내 정신에선 이미 곰팡이가 한창 피어 있었다. 고인 물은 썩어 가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몰라도 그 말은 맞는 말 같다.
그러나 그 이유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었던 것은 굳이 아니라고 할 수밖에. 심마니가 `삼'에 집착했던 것처럼 나도 `지상에서 남겨지는 말 한마디'에 집착하게 되었을 뿐. 그리고 죽는다는 사람이 있으면 까마귀처럼 주위를 맴돌게 되었다.
이름만 거론해도 `아, 그 사람' 하고 떠올릴 사람들, 비명횡사하여 제명대로 못다한 사람들,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 자살한 사람들, 가스폭발사고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그 곳에 있던 사람들, 심지어는 돌풍으로 날아온 나무에 맞아 죽은 사람들, 백혈병이나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 등등 이런 모든 사람들의 죽기 직전에 단 한마디를 들으려고 쫓아다녔다.
가족이나 병원 관계자는 처음에는 누군지 모르고 그냥 내버려두다가 소문이 퍼지자 내몰았다. 촌구석 어느 집에서는 여자라고 때리지는 않았지만 막걸리를 뒤집어썼고, 병원에서는 멱살을 잡혔고, 사고현장에서는 경찰이나 대원들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기를 쓰고 쫓아다녔고 무수한 사람들이 남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한 마디를 기록해갔다.
그렇게 죽음의 역으로 가는 사람들이 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떠났는지 묻고 다닌 이유는 글쎄, 죽음을 앞둔 나도 그 이유를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 이젠 지쳤다. 내일도 죽지 않고 눈을 뜬다면 내일 생각하고 싶다.
“오 기자, 정수아씨는 무슨 말을 하고 세상을 하직할 것 같은가?”
“글쎄요. 선배는 그 까마귀 아니 정수아씨가 유명한 말을 남기리라 생각하십니까? 왜 나는 그녀가 이런 일을 택했는지 모르겠어요. 평범한 외모로 봐서는 그저 평범한 생을 살았어야 하는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 기자는 선배이면서 대학교수인 김형준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정수아는 죽음 근처에 있는 사람들 주위를 맴돈다고 까마귀라는 별명이 붙은지 오래되었다.
“오 기자는 그녀가 강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나는 봤지. 내가 보기엔 그녀는 어린시절 아픔이 컸던 것 같아. 한 학생이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었지. `교수님은 사랑을 못 받았다는 열등감 때문에 보상하려는 의미에서 우표수집처럼 유언을 수집하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하고 묻자 그녀는 웃었지. 정말 크게 웃었어. 모두가 놀랄 정도로 말이지. 그녀가 뭐라 했는지 궁금하지 않나?”
“아마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그 말도 정답에 포함된다고.”
“오 기자가 재치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