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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협, 광복절 맞아 독립운동가 박자혜 간호사 추모식 개최
[편집국] 정규숙 편집국장   kschung@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23-08-16 오전 12:11:24

대한간호협회(회장 김영경)와 충북간호사회(회장 이명희)는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 박자혜 간호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추모식을 8월 15일 개최했다.

추모식은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박자혜 간호사 묘역에서 진행됐으며, 대한간호협회와 충북간호사회 임원, 시도간호사회 회장 등이 참석해 헌화하고 묵념했다.

추모식에서는 독립운동가 박자혜 간호사의 생애와 활동을 탁영란 대한간호협회 제1부회장이 보고했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은 헌사를 통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박자혜 선생님 영전에 대한민국 50만 간호사들을 대표해 경의를 표한다”며 “선생님은 우리 간호사들에게 강인한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오늘 저희들은 선생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고귀한 정신을 되살려 간호전문직으로서 부여받은 의무를 다하고, 국민건강과 국가발전을 위해 행동으로 선생님의 참뜻을 받들고 실천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추모사를 한 이명희 충북간호사회장은 “박자혜 선생님을 비롯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74분의 간호사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간호전문인으로서, 독립운동가의 아내로서,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위대한 삶은 한국 여성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에서 윤석위 고문, 이상식 상임이사, 배경은 사무국장이 함께 자리했으며, 이상식 상임이사가 인사말을 했다.

간우회 만세사건 주도하며 일제에 항거

남편 신채호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

박자혜 간호사(1895-1943)는 일제강점기 당시 동료 간호사와 조산사들을 규합해 ‘간우회’를 조직하고, 독립만세운동 동참을 주도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의 심장부인 조선총독부의원에서 간호사들이 주도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한 점과 그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일제에 맞서 파업과 태업을 조직적으로 주동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간우회 사건으로 일경의 혹독한 취조를 받은 박자혜 간호사는 풀려난 후 만주로 건너갔다. 혁명가의 피가 끓는 여걸 박자혜 간호사는 단재 신채호 선생과 결혼해 아내이자 동지로서 독립운동을 함께 했다.

서울에 돌아와 인사동 69번지에서 ‘산파 박자혜’ 간판을 내걸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독립투사들을 안내하고 연락을 취하는 임무를 맡아 수행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 파괴 임무를 띠고 잠입한 의열단원 나석주 의사를 도왔다.

박자혜 간호사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2008년 충북 청원군(현 청주시 상당구) 단재 선생의 묘소에 박자혜 간호사의 위패를 함께 안치함으로써 부부는 합장됐다. ‘박자혜 산파 터’ 표석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남인사마당 입구에 2020년 8월 26일 설치됐다.

[사진] 서울로 돌아온 박자혜 간호사는 인사동에 산파 간판을 내걸었으나 일경의 감시로 인해 거의 휴업 상태였다. 남편 신채호 선생의 옥바라지까지 하며, 두 아들과 함께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이 이야기가 동아일보(1928년 12월 12일)에 크게 보도됐다.

[사진]1920년경 결혼식을 마친 신채호 박자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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