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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복음 원로
한국 간호역사의 산 증인
[편집국] 취재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0-11-30 오후 13:38:55

「한국 간호계의 대원로 김복음 여사가 28일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의 삶과 간호에 대한 큰 사랑이 담긴 생전의 인터뷰 기사를 소개한다. 이 기사는 93년 2월 25일자 간협신보에 게재된 것이다.」

김복음원로는 올해도 대한간호협회 대의원총회에 참석, 총회의 진행사항을 지켜보고 나기장 수상자모임에서 오랜 지기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이제 기력이 예전과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간호사업에 대한 애정과 관심만은 젊은 시절의 그것에 못지 않아 늘상 새로움과 기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김복음원로는 1909년 강원도 고성읍에서 삼척 김씨가문의 5남매중 넷째딸로 출생했다. 조용한 성품의 부친과 자녀교육에 각별한 힘을 기울인 여걸타입의 모친사이에서 김원로는 활달하고 무엇이든 배우는데는 극성인 적극적인 성품으로 성장하게 됐다.

이러한 성품의 김원로는 그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으로 7세때 여자공립보통학교에 입학, 서양학문을 배우게 됐는데 공부의 즐거움을 일찍이 체득, 계속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지극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내 인생은 종교와 간호라는 두 축으로 이뤄져 있었던 거 같아. 두 개의 정신적 버팀목이 항상 서로를 격려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해줬다고 볼 수 있지"

김원로의 회고처럼 7세때 처음 접하게 된 기독교의 세계 역시 그에게는 무한한 깊이와 경이로 다가왔다. 평생을 성경말씀대로 살겠다고 결심했다는 그는 아무일도 안하고 쉬어야 하는 안식일날 어쩔수 없이 발방아를 찧을땐 예수님을 콩콩 찧는 것 같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계속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보람이 있어 김원로는 15세때 원산 루씨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편물, 양잠, 제사들의 부업으로 학비를 벌어가며 학업을 계속한 김원로는 학업 성적에 단연 두각을 나타내 고등보통학교시절엔 4년간 장학생으로 공부했으며 이어 1930년 우수한 성적으로 세브란스 간호원양성소에 입학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이화여전 가사과 지망을 권유했으나 김원로는 이때 앞으로 할 일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서 있었으니 그것은 "육신의 병과 영의 병을 아울러 고칠수 있는 의학분야의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에도 계속된 종교활동을 통한 각성과 여성직업으로서 가장 적합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에 간호사의 길을 택한 김원로는 굳은 의지와 성실성으로 세브란스 간호원양성소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때 간호교육과정의 한 특징은 선·후배간의 철저한 위계질서였지. 신입 간호학생은 3학년 선배들이나 병동의 수간호원을 보면 꼭 경례를 부치고 그들이 일을 마칠때까지 서있곤 했어"

이러한 풍토는 그당시 거의 모든 간호원양성소에서 통용되던 것이었는데 김원로는 후에 간호사업이 발전하는데 있어 선배들의 책임감, 후배들의 선배에 대한 존경심 등 이때 배양된 의식이 크게 긍적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평가한다.

보호자 한명없이 전인간호를 수행하는 실습교육과 한달에 한번으로 외출이 제한되는 기숙사 운영체제속에서 열심히 공부한 김원로는 졸업후인 1933년 일본 동경의 성누가여자 전문대에 부설된 공중위생연구과정을 밟으러 유학길에 오른다.

이때 농촌보건간호, 학교보건, 수도국·오물처리장 견학등 공중보건간호의 기본연수과정을 거친 김원로는 해방후에 보건후생부 보건간호과 업무를 맡는등 우리나라 보건 간호행정의 기틀을 닦는 일에 종사하게 된다.

귀국하여 모교인 세브란스에서 기숙사 사감으로 일하던 1936년 목사의 소개로 김원로는 이후 60년이상을 해로할 천생의 배필 김석목씨와 결혼을 하고 남편의 근무처인 영변승덕학교로 가게 된다.

해방을 맞아 정국이 어수선하고 좌·우익의 갈등으로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시절 김원로는 1남3녀를 낳아 기르며 집안살림에 충실하다 1947년 보건후생부 간호사업국 보건간호과에 취직을 하기에 이른다.

이듬해인 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간호사업국이 보사부 의정국으로 들어가 간호사업과로 축소됐으며 이후 더욱 축소돼 현재까지 계의 수준에 있기 때문에 김원로가 근무했던 1947년은 보건행정체계에서 간호부문이 가장 인정받던 시기이기도 하다.

간호사업국은 짧은 기간이긴했지만 전국 간호사들에게 1년에 2∼3회씩 현대간호 단기강습을 받도록 했으며 각계인사로 간호사업위원회를 구성, 간호사업 발전을 도모하고 각 시도에 설치된 간호사업계와 유대관계를 강화하는 업무등을 추진했다고 한다.

"지금도 많은 간호사들이 직장생활과 육아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데 고급 전문인력을 활용한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한시라도 빨리 각 직장에 탁아소가 설치돼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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