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칼럼

[서울아산병원] 고수경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6-05-18 오전 09:28:01

　책상 위에 놓인 모래시계를 아무생각 없이 거꾸로 돌려놓는다. 가느다란 모래줄기가 실비 내리듯 떨어진다. 이어지는 모래줄기를 보면서 잠깐 다른 생각에 빠진 사이, 어느덧 모래 비는 그치고 아래에는 작은 모래성이 만들어져 있다. 나는 또다시 거꾸로 돌려놓는다.

　어느 날 혈압을 재고 나와 눈이 마주친 할아버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간호사님, 안녕하세요! 매일 여기에서 근무하세요? 내가 오랫동안 뵙는데 항상 밝으셔서 오늘도 기분 좋게 진찰받고 갑니다.”

　어느덧 진료상담간호사로 근무한지 8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고객과의 최접점에서 수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한결 같은 모습으로 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친절하고 싶은데 잘 안돼요!”라며 한숨을 쉬는 직원들을 종종 만난다. 사람도 감정의 동물인지라 1년 365일 내내 친절하고 즐겁게 지낼 수만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분 좋을 때는 한없이 밝은 표정으로, 화날 때는 미간에 깊은 골을 만들며 내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은 진정한 `프로'의 모습이 아니다.

　진료시간이 끝나갈 때쯤 허둥지둥 와서 예약증을 불쑥 내미는 고객에게, “이렇게 늦게 오시면 어떡해요?”라고 짜증스럽게 응대하면 미안해하던 고객의 마음은 0.1초도 안돼 바로 불쾌한 감정으로 바뀌게 된다. “제가 많이 기다렸어요. 진료를 못 보시게 될까봐 걱정했는데 오실 수 있어 다행이에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객의 마음에 작은 감동의 화살을 쏘아보자. 나의 따뜻한 배려의 말 한마디가 모래시계에서 떨어지는 모래처럼 소리 없이 쌓이게 되면 어느덧 친절한 당신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신뢰의 모래성이 쌓일수록 고객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리라.

　친절하기가 좀 어색하다고 부담스러워 하면 시간이 흘러도 진정한 `프로'의 모습이 되기가 어렵다. 그것을 편안하고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삶이 즐거워진다.

　“바라보자. 무한한 사랑의 눈빛으로 / 감싸 안아라. 따뜻한 가슴으로 / 말하라. 향기가 되어 가슴에 오랫동안 남도록.” 우리 한번 오늘 하루도 행복 가득 찬 날로 만들어 볼까요?

고수경(서울아산병원 PI팀 진료상담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