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칼럼

[수정보건진료소장] 김연희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3-01-16 오전 11:24:10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책임과 의무로 남겨지건만 우리는 마치 나무가지 끝에 앉아 흔들리는 참새 마냥 생각 없이 세상의 바람을 즐기는 게 아닌가 싶다.

　더 높고 넓은 건물 속에서 살게된 우리의 마음은 점점 좁아지고, 지식은 많건만 개인주의가 팽배되어 윤리와 도덕은 무너져가고 무조건 편하고 자유로움만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 든다.

　살다가 눈에 흙이 들어갈 운명의 인간이기에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형식을 유지하는 마음의 질서를 여행을 통해 조용히 초대해 보았다.

　정체교육학을 공부하던 중 일본 큐슈로 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다. 청포도알 같이 투명한 부모세대의 아픔으로 인해 쉽게 마음이 가지 않던 일본은 익히 듣던대로 친절과 질서 잡힌 삶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어디서나 조용하게 한 줄로 서서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작은 몸매마저 질서로 빈틈없어 보였다.

　점심을 해결하고자 들어선 식당에서는 밥 한 공기와 반찬 세 가지에 된장국과 긴 나무젓가락이 나왔다. 첫술에 숟가락이 어디 없나 살펴보니 없었다. 모두들 젓가락으로 밥을 먹고는 된장국을 그릇째 들고 조금씩 마셨다.

　멀건 된장국에 긴 젓가락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잘 어울렸다. 필수불가결의 관계란 습관화된 어울림의 결과일 것이다. 긴 젓가락으로 천천히 밥을 떠서 먹는 것이 서툴러 자꾸 숟가락이 그리워 둘러보다 `여긴 내 나라가 아닌 일본이지'하며 국그릇을 들고 따라 마셨다. 간단한 식사에서부터 작은 기다림의 질서가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꽉 짜인 연수시간을 틈내어 산아래 둔덕 위의 낯선 마을을 향하여 걸어봤다. 가가호호 가족계획 방문사업을 하던 30년 전 젊은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번졌다. 길가의 비어있는 논바닥에는 논고둥이 제법 굵어진 제 몸뚱이를 굴리며 논다. 벼가 다 큰 논바닥에도 살펴보니 고둥이 수두룩하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유기농법의 벼 밭에서 춤추는 허수아비가 아니라 예쁘게 치장하고 서있는 마네킹 허수아비가 이색적이었다.

　담장과 현관문 앞으로 즐비하게 늘어진 이름 모를 꽃들에게 이국의 인사를 건넨다. `저어… 저는 한국에서 온 나그네인데 당신의 모습이 참 아름답군요. 난 당신 모습을 처음 봐요. 잎새가 정교하고 곱군요…' 답례로 품어주는 향기를 당겨 맡는다. 작은 꽃들과 같이 사는 아담한 집주인도 꽃들처럼 정겨우리라.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낯선 동네에서 하늘과 땅 사이 뻗은 작은 길가에 홀로 앉아 있으니 존재의식 속에서 절대자와 더욱 가까워진다. 시냇물도 흘러가고 어디선가 나온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한 줄로 질서를 지키며 사라진다. 물따라 흘러가 나도 흐르듯 숙소로 돌아왔다.

　기차를 타기 위해 간 하카다역에서는 역내 식당에서 질서있게 배식을 기다리고 있는 젊은 신사들 사이로 비스듬히 누워 여유있게 만화책을 보고있거나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노숙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디서나 질서정연하듯 얽매인 사회생활이 싫어서 자유인임을 선언하고 돌아다니지만 구걸하거나 죄짓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자존심이 강한 젊은 노숙자들. 책임과 아름다운 구속을 벗어난 지나친 자유선언의 물결이 가까운 우리나라로 불어올까봐 선뜩 겁이 났다. 어서 각자 그들의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가 인간 본연의 존재에서 확인받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를 기도해 본다.

　시모노세키항 근처의 해양수족관을 둘러보러 간 자리에서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작은 개미떼 같이 자리잡힌 질서가 또 다시 아름답게 보였다. 작은 질서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법. 뇌리 속에 조용히 박혀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철저한 습관이 부러웠다. 차근차근 서둘지 않으며 쉬지도 말며 꾸준한 삶을 살아야한다는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었다.

　개를 몰고 산책 다니는 할아버지의 비닐봉지에는 작은 삽이 들어 있다고 하니 동물의 변도 따라다니면서 치우는 그들이 빈봉지나 빈병 하나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 내 질서의식은 `일본은 있다'로 기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아름다운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겸손 의식이 앞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된장국과 긴 젓가락의 어울림에도 숨어있는 문화의식에 그동안 바삐 살아온 내 삶의 질서의식은 국가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짚어본다. 잘 짜여진 미끄러운 천처럼 질서의식을 내 마음으로 초대하며 우리의 질서의식이 `한국은 있다'로 바짝 따라잡을 것을 기대하며 마음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