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칼럼

[서울대학교간호대학] 이소우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1-06-08 오전 09:23:32

간호사는‘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 생명에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은 생명유지, 보호, 관리를 위해 이뤄지는 여러가지 형태의 간호행위에서 나타난다.

'소극적 안락사'라는 단어가 온 대중매체에서 확실한 개념과 의료현장의 실체를 모르는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안락사든 소극적 안락사든 그 단어가 의미하는 궁극적 내용은 같다. 안락사(eu thanatos)란 말에는 아름다운 죽음, 평화로운 죽음이란 뜻이 내포돼 있고 安:평안하고 잠자는 것처럼 樂:즐겁고 기쁘게 死:죽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때문에 안락사는 편안하게 죽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것으로 호도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서의 안락사는 질병의 고통을 없애려는 어떤 의학적 개입을 의미한다. 소극적 안락사도 '무의미한 치료의 중단과 소생불능한 환자를 방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이 역시 죽음을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네덜란드가 2001년 들어 안락사를 합법화시키면서 그 파문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4월 12일 대한의사협회에서는 회생불가능한 환자의 치료중단을 환자 본인이나 가족이 요구하는 경우 의사가 이에 응할 수 있도록 하는 윤리지침의 제정을 둘러싸고 찬반 공방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간과됐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가 병원에서 퇴원한 뒤 자연스럽게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가정이나 시설에서 계속적으로 호스피스간호나 가정간호 등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논쟁에서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안락사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그 결과적 행위의 옳고 그름만 담론으로 떠오르고 있을 뿐 환자가 왜 안락사를 원하는지, 환자의 고통을 도와 질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적 해답이 '호스피스간호'라고 말할 수 있다. 죽음과 관련해 가장 비윤리적이고 곤혹스런 문제 중 하나가 안락사라면 가장 윤리적이면서도 단말마의 고통까지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호스피스간호라고 생각한다.

최근 간호계에서 '생명연장술 사전선택제도 선호도에 대한 연구'가 나왔다. 유감스럽게도 170명 대상자의 73.5%가 회복불능상태에서 생명연장을 원하지 않는다고 응답했고 응답자의 83.5%는 '생명연장술 사전선택'이 뭔지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연구주제는 연구자의 자유선택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연구를 안락사 찬성쪽에서 십분 활용하게 해 간호계 스스로 말기상태-호스피스간호-질적인 죽음준비 과정의 담론을 차단한 결과가 됐다는 점이다. 170명의 연구대상이 건강한 사람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말기상태의 환자나 그 가족의 생각과도 일치한 결과일까? 건강할 때는 모른다.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키고자 전문적인 의료행위를 비롯해 기도원이나 온갖 건강식품 등이 동원되고 있는 의료현장의 실태를 연구한 적이 있는가?

가정간호 환자 중에서 50%이상이 말기상태의 환자이며 환자와 그 가족들이 질적인 생명을 유지하고자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모습을 생생히 증언하는 가정간호사의 임상보고를 들은 적이 있는가?

말기암의 고통-안락사-생명연장술 사전선택제도를 위한 비인간적이고 비전문가적인 홍보와 교육보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전문가적인 호스피스간호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

이것이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절대적 대안이라는 것을 간호계는 의무와 책임감, 그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인간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세기에 나이팅게일이 크리미안 전쟁에서 아군은 물론 적군까지 간호해 줌으로써 생명의 존엄성을 전세계에 알리는 적십자 박애정신의 기초를 만들었듯이 21세기 오늘날의 간호사는 호스피스간호로 죽음에 이르는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안락사의 바람과 공포로부터 환자를 구하는 또다른 박애정신의 기초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