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9주년 특별기고-환자경험, 병원의 핵심 경쟁력
환자경험 관리, 선택 아닌 필수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5-11-11 오전 08:32:36

김재학(서울아산병원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 소장)
◇핵심가치로 채택 … 병원 문화와 시스템 혁신
◇미국 유수병원들 환자경험 최우선 지표
◇환자의 모든 접점 모든 순간에 최고의 의료
지난 주 US News에서 개최한 ‘Hospital of Tomorrow’라는 포럼에서 메이요클리닉, 존스홉킨스병원, 클리블랜드클리닉 등 주요 병원과 관련 업계가 모여 병원의 미래에 대한 열띤 논의를 했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존스홉킨스병원의 최고환자경험관리자가 얘기한 ‘환자경험이 병원 미래의 핵심’이라는 내용이었다.
최근 국내 대부분 병원들도 환자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측정하고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병원에는 여러 가지 ‘매우’ 중요한 우선순위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며, 현장의 직원들 입장에서는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Centers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vices(CMS)’가 병원 평가 항목에 의료의 질과 환자경험을 포함하면서 더욱 많은 병원이 환자 만족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존스홉킨스병원의 전체 수익의 2%가 질 평가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이 중에서 45%가 환자경험 평가에 해당한다고 한다.(출처: US News의 존스홉킨스병원 Chief Patient Experience Officer 인터뷰) 2013년 수익이 약 7조원(USD 6.7billion) 정도이므로 약 630억원 정도에 해당하는 큰 숫자이다. 그래서인지 국내 병원들과는 달리 미국의 많은 선도 병원들은 환자경험을 최우선 지표로 삼고 있다. 어떤 차이점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병원의 핵심가치이다. 메이요클리닉의 핵심가치는 ‘The needs of patient come first’이고, 클리블랜드클리닉의 핵심가치는 ‘Patient First’이다. 요식적인 핵심가치가 아니라 현장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판단기준이 되고 행동양식이 된다.
환자경험 관리에 있어서 가장 큰 조직적인 걸림돌은 소통의 부재와 보수적인 문화라고 한다. 의사와 간호사, 의사와 환자, 간호사와 환자 간의 소통의 부족은 의료 전달 과정상의 조율의 부족을 야기하고 이는 환자 안전, 치료 결과, 환자 만족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가 전략적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모든 직원들에게 이를 알리는 것이다. 이사회, CEO, 경영진 모두가 환자경험 관리의 중심이 되어 이끌어야 한다.
둘째로는 환자경험을 관리하고 개선하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과 투자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병원들이 간호부 중심으로 CEM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행단계에 있어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병원의 특성상 대부분의 개선활동은 간호직뿐 아니라 의사직, 행정직, 보건직 등 모든 부서가 함께 움직여야만 성공할 수 있다.
클리블랜드클리닉의 ‘Office of Patient Experience’는 100명이 넘는 직원이 연간 100억원이 넘는 예산을 가지고 모든 환자가 모든 접점에서 모든 순간에 최고의 의료를 제공받도록 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결과 2008년 환자만족도 순위 55percentile에서 2012년도에는 92percentile로 급상승했다. 환자경험을 최우선 전략으로 하는 리더십의 강력한 메시지, 전사적인 문화와 시스템 혁신을 위한 노력, 그리고 이를 위한 지속적이고 과감한 투자가 이뤄낸 성과이다.
셋째로는 디자인적 사고와 린스타트업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병원의 환자와 가족처럼 숨어 있는 진짜 니즈를 파악하기 어려운 곳이 없다. 병원을 찾는 환자는 다른 산업의 소비자처럼 본인이 원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적극적 소비자가 아니며 본인의 니즈를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표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보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것이 디자인적 사고의 기본이다.
또한 빠른 테스트와 실행을 통해 문제를 찾고 개선하고 이를 빨리 반복하는 린스타트업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메이요클리닉의 ‘Center for Innovation’, 클리블랜드클리닉의 ‘Office of Patient Experience’, UCLA병원의 ‘Institute for Innovation in Health’, 카이저퍼머넨테의 ‘Innovation Consultancy’ 등 서로 다른 미션과 성격을 갖는 혁신 부서들의 공통점은 바로 디자인적 사고와 린스타트업 방식이다.
환자경험에서 출발하는 병원의 혁신이 미래의 병원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인가? 필자는 그러리라고 확신한다. 2000년대 후반까지 병원산업은 지속적으로 급성장해온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었다. 병원의 핵심 경쟁력은 우수한 의료진의 수급, 규모, 효율이었다. 하지만 이후 성장률은 한자리수 초반 대에 머물고 있다. 즉, 성장이 둔화되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소비자 중심의 시장으로 변화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장에서의 핵심 경쟁력은 과거와는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환자와 가족의 니즈를 빨리 파악하고 변화할 수 있는 유연한 문화와 대응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그의 저서 ‘파괴적 의료혁신’에서 초기에는 성능과 기능적 신뢰성이 품질의 기준이지만, 기능이 신뢰할 만한 수준 이상이 되면 그 이후에는 품질이란 곧 ‘편리함’ ‘고객맞춤화와 대응력’ ‘가격의 적절성’ ‘속도’ 등을 의미하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국내 많은 병원들은 아직 환자경험 관리는 필수(necessity)가 아닌 선택(nice to have)으로 여기고 있다. 국내에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환자경험’을 토대로 한 적정성평가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하니 병원의 수익 측면에서도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병원들도 빨리 Chief Experience Officer 제도를 도입하고 보다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환자경험 관리가 시작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