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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간호문학상 - 수기 당선작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7-12-19 오후 04:38:11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하여

장화숙(서울시 서남병원)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오늘 또 한 명의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는 이들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온 첫 마디이다. ‘갑자기’라는 말에 매번 안타깝기만 하다. 보호자들이 애도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나는 건넨다. “OOO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힘들지 않게 편히 쉬세요”라고 떠나는 이에게 말을 건넨다.

 

간호사라는 이름으로 살아 온지 12년, 호스피스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걸어온 시간은 이제 겨우 3년을 채워가고 있어 그리 길지 않다. 할수록 더욱 조심스럽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호스피스 완화의료다.

처음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에서 근무하며 임종환자를 보냈던 시간들이 있었다. ‘일반병동에서와는 다른 모습이여야 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업무만 절차대로 정리를 했다. 환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그 어떤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게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나의 첫 모습이었다.

하루는 밤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폐암의 김모 할아버지는 흉수관을 꼽고 걸어 다니며 병동 내에서는 컨디션이 제일 좋아 보이는 분이셨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쌕쌕거리는 호흡소리와 함께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소량이 늘어날수록 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을 설명한다.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은 밤새 깊어져만 갔고 새벽녘이 되어서는 절정에 달했다. 폐암환자가 느끼는 가슴 답답함은 마약성 진통제(모르핀)가 도움이 되기에 처방에 따라 투약했다. 증상은 호전되었지만 할아버지의 불안감을 사라지지 않았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죽음에 대한 불안감은 더 커졌고, 호흡은 더 거칠어졌다.

할아버지 자리에서 호출벨이 울린다. “같이 있어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곁을 떠날 수 없어서 남아있는 일은 잠시 뒤로 한 채, 그 곁을 지켜드렸다. 의료진이 가까운 곳에 있으니 걱정 마시라는 말과 함께 불안으로 흐트러진 호흡을 천천히 교정시켜 준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서 안타까운 순간이다. 손을 잡아 드리고 심리적 안정을 위하여 등을 토닥여 드렸다. 그것만으로도 안정을 찾으시고 잠시 등을 기대어 눈을 붙이셨다. 잠이 드신 것 같아 자리를 뜨고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할아버지의 호출벨이 울렸다. “같이 있어주세요” 몇 차례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서야 끝내야 할 업무를 정리하고 할아버지께 갔다. 등을 기대지도 못하고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내뱉는 호흡만 여전히 많았다. 답답해 보여 진통제를 드리겠다는 설명을 하고 뒤돌아서는 내 팔을 붙잡으며 “같이 있어주세요”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맥없이 떨어지는 할아버지의 팔을 느끼며 내 마음이 내려앉는다. “OOO님“ 반응은 없고 온몸에 힘도 없으며 얼굴은 지칠 대로 지쳐있다. 배우자에게 임종방으로 이동하겠다는 짧은 말을 남기고 할아버지의 등을 침대에 뉘었다. 그리고 조용히 병실을 이동한 후 자녀들을 부를 수 있도록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두어 번 부르시더니 내게 와 부둥켜안고 우신다. 나는 보호자를 안고 토닥이며 같이 울어 드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처음 건넨다. 떠나는 할아버지에게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참 편안해보이십니다. 아픔 없는 곳으로 편안히 가세요.”

그리고 몇 달 뒤 사별가족 모임에서 만난 할머니와 다시 한 번 부둥켜안고 울었다. 밝은 모습으로 웃어주시며 참 고생 많이 했다고 건네시는 말 한마디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그것이 나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간호사로서의 첫걸음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호스피스와 완화의료는 개념이 다르다. 호스피스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 일이라면, 완화의료는 무리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신체적, 정신적 치료와 돌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빙산에 비유를 들자면 호스피스는 수면 위로 보이는 빙산의 일부이고, 완화의료는 수면 아래 커다란 얼음까지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은 빙산의 일부만 보며 호스피스는 곧 죽음과 연결된다고 여겨 거부적인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무리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며 남은 시간들을 정리하는 곳이다. 또한 임종까지 고통 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통증 치료와 증상완화를 목적으로 치료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곳이기 전에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곳이라고 완화의료를 하는 우리는 말한다.

완화의료 병동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맞이할 때, 지금까지 치료를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다 받은 상처들을 들어주고 위로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동안 듣고 알게 된 편협된 의료지식들(마약성 진통제를 많이 맞으면 좋지 않다, 중독된다 등)을 깨트리고 통증조절의 중요성과 말기암환자들의 급격한 상태변화, 임종단계에 나타날 수 있는 증상들에 대해 설명하며 낯설고 두려운 길에 우린 길잡이가 되어준다.

 

완화의료 병동에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졌던 보호자들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췌장암 말기 이모 할아버지는 처음 입원했을 때 거동은 가능했지만 섬망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하지만 통증이 찾아오면 분명하게 표현했으며 안절부절 못하고 얼굴 찡그림, 앓는 양상이 동반되는 등 명백한 통증양상이 관찰되었다. 하지만 배우자와 자녀들은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면 몸에 좋지 않고 중독된다는 생각 때문에 투약을 거부하기 일쑤였다. 여러 차례 같은 설명을 반복하며 통증이 지속되는 동안 말기암환자들은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되지 않음을 알렸다. 또한 암성통증에 효과가 있으며 용량제한이 있는 일반적인 진통제와 다르게 환자 개인의 통증에 따라 투여용량이 다름을 설명했다. 하지만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의 많은 설명에도 변하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 변화가 오며 거동도 어려워지고 섬망은 증가되었다. 불면과 통증으로 환자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냈고 동반된 섬망은 보호자들을 더 힘들게 했다. 환자가 고통 속에 병실 바닥에서 뒹굴 때에도 보호자들은 진통제 투여를 거부했다. 수면제나 안정제 투여도 거부하고 통증으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찾아가 통증을 사정하려는 간호사들의 방문도 꺼려했다.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답답한 순간들이다. 이 순간 우리는 환자를 안전하게 침상 위로 이동시키고 보호자에게 섬망이 나타날 때 대처하는 방법들과 섬망 증가 시 급격히 변화 될 수 있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알린다. 그리고 말기암환자들이 느끼는 상상도 못할 극심한 통증과 두려움들에 대해 설명한다. 그제야 마지못해 진통제 투약을 허용한다. 진통제 투여 이후 환자의 표정도 행동도 안정이 됨을 직접 보지만 다음번에도 다음날도 같은 상황 속에서 보호자들은 적극적인 진통제 투여를 꺼려하긴 매 마찬가지였다.

같은 상황, 같은 설명이 반복되어도 우리는 해야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을 위해서... 시간은 흘러 결국 통증 조절을 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보호자들은 연신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마치 ‘드디어 끝났다’는 표정으로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고 적극적인 통증조절의 중요성 그리고 마약성 진통제 투여에 대한 설명을 하다보면 “병원에서 그거 맞으라고 해서 맞고 죽는 거 아니냐”며 소리 지르는 보호자를 대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리고 임종 후 부검을 하러 가겠다는 보호자들까지 만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각자가 원하는 임종까지의 모습들이 있을 수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완화의료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처음 겪는 죽음 앞에 간호사였던 나도 당황스러웠다. 일반인들 또한 모르기 때문에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안한 죽음의 길로 가는 방법들을 알려줄 길잡이가 필요한 것이다”라고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정말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죽음이 앞당겨졌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아니다’였다. 마약성 진통제를 전혀 투여되지 않았던 환자들도 하루하루 다르게 급격한 상태변화가 오고 아무도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임종까지 이르기도 했었다.

 

완화의료 병동 내에는 ‘소진’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사전적 의미의 소진은 ‘점점 줄어들어 다 없어짐’이다. 신체적 돌봄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때로는 영적 돌봄까지 하다보면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는 팀 접근이 한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 가장 큰 심리적 소진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조절되지 못했던 통증, 환자가 생각했던 임종의 모습이 아닐 때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그래서 완화의료 병동 내에는 팀원들을 위한 소진프로그램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치유되고 소진을 회복하는 곳은 사별가족 모임이다. 사별가족 모임은 사별을 경험한 분들을 위로하고 떠난 이들을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시간들이다. 변한 것이 없는 일상에서 참고 참았던 슬픔을 표현하고 그리운 이들을 마음껏 불러보는 시간이라고 보면 좋겠다. 이 시간이 내게 치유가 되는 건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적어도 완화의료 병동 내에서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생활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사별가족 모임 때 많은 보호자들이 이야기 한다. “이렇게 좋은 완화 병동이 왜 많지 않은지? 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지? 정말 꼭 필요한 병동이라고.” 꼭 필요한 곳임을 나 역시 느낀다. 소진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질병을 치료하고 회복을 돕는 누군가가 필요하듯, 질병이나 죽음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 또한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간호사로서 살아가는 동안 이 일을 계속 할 것이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다. 또한 정신적, 심리적을 넘어 영적, 감성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 보람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 보려 한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하는 우리 사이에 이런 말들이 있다. “호스피스는 사랑입니다.” 나는 그 사랑을 계속 해보고 싶다. 나는 그 사랑을 계속 나누어주고 싶다. 그리고 폴 칼라니티의 말처럼 ‘나는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결심했다’<숨결이 바람 될 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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